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한 그런 시절을 말하는 것이다.
청춘은 이처럼 아름답고 파릇파릇하며 내면에 무한하게 잠재된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 에너지는 비젼이나 열정에 연결된다. 청년들이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보석같은 결실을
우리는 청춘에서 기대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은 환상을 경험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의 청춘은 이러한 벽을 뚫어야 한다.
나의 청춘은 어떠했던가? 7080에 청춘을 보낸 나는 집안 일(?)에 종사하던 시간이 많았다.
개인적인 학교 공부보다는 집안 일이 더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일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군사정권에 자유가 짓눌려졌던 시절이었다.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이룩하였던 박정희정권은 나름대로 그 당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박정희 사후 혼란기에 지도자들의 내분 틈으로 전두환군사정권이 다시 들어왔다.
역시 정치적 자유가 억눌린 시절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청춘시기는 정확하게 박정희정권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보다는 박정희 정권이 훨씬 더 무서웠다. 자유가 억눌린 상황에서 청춘이 역할을 나타내는 범주는 제한적이다.
내 청춘은 제한적이었다고 추억된다. 내가 나름대로 민주화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몇군데 기웃거린것도 사실이지만
드러내놓고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적 사명에 인생을 거는 용기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내 청춘의 미래에 대한 욕구 역시 불투명하였다. 어떤 뚜렷한 비젼을 가진것도 아니었고,인생을 걸만한 사명감을 느낀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살아지는 대로 몸을 맡곁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부끄럽지만 내 청춘은 어떤 목표의식도 없었다.
밥먹고 ,나이먹고 그러다 보니 어느날 직업이 생겼고 그 직업에 오늘날까지 봉직하고 있다.
한번 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가끔하지만 별 뾰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살았다.
다만 대충 살은 것은 아니고 내 직업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였다. 처음부터 교장이 되려고 한것은 절대 아니었다. 교장은 꿈도 꾸지 않았다.
어떻게 교장이 되었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성실성을 경기교육이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냥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근무해왔더니 내 조직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교장으로 만들어주었다는 표현이 맞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취업에 실패하면 인생을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청춘은 취업에 매달려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두명의 조카가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구박받는것을 보면 그 청춘이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들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도록 어른들이 도와주어야한다. 일자리도 더 만들고 아름다운 공간도 만들어줘야한다.
오늘 아침 그 조카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처음 7줄은 경기일보에 실린 시인 최문자씨의 글을 참고하였다.
군인 시절의 사진이다. 스캔하다 보니 흐리게 나왔다. 청춘시절의 사진을 다시 찾아야겠다.
지난 토요일 서울 사당에서 교육전문직 동기회 모임이 있었다. 반정도는 아직도 장학사로 재직중이고 나머지는 장학사하다가 교장과 교감으로 일선 학교에 나왔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세상을 살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나보다는 더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