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경기수필가협회에서 2020년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금년도 경기수필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온다.

나는 詩 와 수필 두가지 장르에 모두 등단하였는데 사실 시는 은유의 뒤에서 나를 감출 수 있다.

하지만 수필은 드넓은 문학의 강호에 내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야하기 때문에 수필 원고 청탁을 받으면 망서려진다.

써도써도 수필은 어렵다.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작품상으로 선정된 나의 수필 ‘겨울이야기’ 전문을 여기에 올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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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야기

                                                                               맹기호

 

그렇게 붉타오르던 단풍도 갔다. 거리엔 차가운 북서풍이 휘몰아치고 하늘은 팽팽하다. 대지엔 적막이 드리워졌다.

겨울잠을 자는 곰은 굴속에 누웠고 잔디는 누런 떡잎을 눌러 뿌리를 덮고 내년을 기약한다.

나는 마지막 남은 단풍잎마저 떨어진 앙상한 고목 옆에 서서 지난여름을 생각한다.

나에게 겨울은 천지간에 홀로 있음을 느끼게 한다. 겨울은 나 자신이 혼자이며 그래서 고독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한다. 그것은 겨울의 힘이다.

 

겨울밤에는 지난여름 나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독선에 대하여 생각한다.

겨울의 힘은 나의 오만으로 상처받았을 나와 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다.

 

불행의 근원은 인간관계에 있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행복의 원천 또한 인간관계에 있다.

우리는 불편한 인간관계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지만, 우주에서 혼자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다.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1231일 저녁, 일 년 동안 나의 오만으로 상처를 준 사람의 리스트를 인간관계 불합치의 무게 순으로 작성한다. 대개 5명 정도 나온다.

그리고 문자를 정성 들여 써서 보낸다. 그다음 전화를 건다. 상대도 똑같이 상처를 받았으므로 첫 반응은 매우 놀란다.

가벼운 인사부터 시작하여 진심을 담아 지난해 나의 편견에 대하여 사과한다. 어떤 때는 사과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도 사과한다.

상대는 얼떨결에 정신없이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에서부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부탁하라는 말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나와 상대의 영혼은 동시에 치유된다. 이것도 겨울의 힘이다.

 

겨울밤은 고독하다. 글은 고독과 결핍에서 온다. 고독은 글쟁이의 밥이다.

사랑의 이야기도 그러하다. 사실 이루어진 사랑은 별로 쓸 게 없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살다 죽었다. 그러면 쓸게 없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이야기가 다르다. 겨울처럼 고독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배부르고 등 따신 것을 조심해야 한다.

겨울은 태생적으로 고독을 잉태한다. 결국 겨울은 글을 쓰게 하는 원천이다. 나는 일 년 글의 대부분을 고독한 긴 겨울밤에 쓴다.

 

겨울의 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면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차가운 바람이 가져다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본질과의 해후는 눈물겹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으로 잊고 있었던 본질을 겨울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시간은 왜 가는가? 신은 있는가?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으시는가? 등을 생각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인간 생명 근원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 젊은 어느 날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고독한 겨울의 심연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한다.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찾고 거기에서부터 진리의 체계를 세우려 했던 데카르트처럼 내 사유의 기저를 다지려 한다.

삶은 결론이 없을 것이라고, 그냥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나의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애처롭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병환이 깊으실 때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평생 살아오신 집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돌아가시기 열흘 전 119 요원이 사용하는 들것을 구입하여 아버지를 누인 채로 앰블런스로 출장 간호사를 대동하고 집으로 모셨다.

아버지는 마지막 눈길로 50년 살아온 집을 보시며 이 좋은 세상을 두고 가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한순간에 아버지의 정신세계가 없어지고 빈 육신만 남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 이대로라면 나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군인도 아니면서 전쟁 여파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 지진으로 갑자기 사망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러의 말처럼 인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아무리 범부의 인생이지만 평생을 기울인 내 삶의 노력도 너무나 무상하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밖에는 겨울비가 내린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환원성 대기로 이루어진 원시 지구에서 방전 에너지에 의해 생긴 유기물이 원시 바다에 축적되었으며,

이로부터 자기 복제가 가능한 원시 생명체로 진화하였다는 오파린의 가설을 생각한다.

원시 지구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 오파린의 생명기원설은

화학적 진화를 통해 생명의 탄생을 설명함으로써 다윈의 진화론을 생명 탄생의 순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벽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아미노산의 합성만 가지고는 생명의 탄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생명체는 움직여야 하고 번식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세계가 정말 복잡하고 신비롭다.

진화는 탄생 이후를 설명해주지만, 탄생 그 자체는 설명하지 못한다.

 

신앙도 가지려 애를 써보기도 했다.

청마 유치환의 시집 서문에 신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나는 신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불행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겨울날 깊은 밤에 내 평생의 과제인 본질을 생각한다.

인간의 탄생 과정을 생각하면서 내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나의 존재하는 본 모습, 실존을 생각한다.

나는 봄이 올 때까지 긴 겨울에 침잠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해가면서 글을 쓴다.

나의 천성인 게으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내 생각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다면

앞마당에 새봄의 정다움이 마음껏 이르른 날 돋아난 새싹에게 다정한 웃음을 전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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