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 550미터 출렁다리

여주 출렁다리에 다녀왔다. 국내 최장 550m라며 신문마다 선전이 대단하여 가보았다. 안전을 생각해서 다리 상판을 철로 만들어 위험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좋았지만 출렁다리를 걷는다는 스릴이 전혀 없어서 싱거웠다.

안전하고 민및한 다리라면 여주까지 와서 걸어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천천히 입장하였고 앞 사람이 가는 속도대로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출렁다리는 출렁출렁거리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민및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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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전시회

내가 재직했던 매탄고등학교 후임 교장선생님이 내 작품을 학생들과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계획을  말했다. 교육적 효과가 있을 듯하여 응했는데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오늘 집안 청소를 하다가 포스터가 굴러다녀 벽에 붙이고 찍었다.  이름 맹기호 글씨는 내가 유화붓으로 직접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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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새우탕

어린 시절 겨울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민물새우를 잡으러 갔다. 고향의 샘논을 위한 웅덩이에서만 민물새우가 난다. 1급수 수질의 샘에서 자란 민물새우를 잡아다 매운탕을 끓이면 그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사람은 어릴 때 먹던 것을 찾는다고 했던가?  오늘 우리 세 식구는 민물새우탕을 먹으러 갔다. 식솔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 했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 그간 안녕하셨나요? 잘 계시죠? 어머니가 벌써 95살이 되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버지 곁으로  갈겁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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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선생

김영선 선생이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전화를 해왔다.  스승의 날이 들어있는 5월에 그런 전화를 받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김선생을  고등학교에서 3년 가르쳤다. 지나고 보면 학생들을 더 열심히 가르쳤어야 했는데 스스로 돌아보면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이 없다. 잘 가르쳤다면 오늘날 이 나라 현실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나는 고등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쳤고 중학교에서는 교과 통합으로 역사도 가르쳤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택한 정치체제 중 가장 인간적이고 훌륭한 제도이다. 인간을 존중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보면 그러하지 못하다. 아직도 세계에는 공산주의 청치체제가 남아 있다. 볼쉐비키 혁명 이래 70년 소비에트 실험으로 이미 종말을 고한 체제인데 우리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세 나라는 아직도 공산주의 체제이다.  나는 그러한 공산주의에 비해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인간을 존중하는 체제인가에 대하여 가르쳤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민주주의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에 대해 더 잘 가르쳐야 했었다. 그게 후회가 된다.

김영선 선생은 정말 인품이 훌륭하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을 지녔지만 교과에 대한 실력도 대단한 사람이다. 가정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부인도 인품이 훌륭한 분이었다.  아마도 학생들을 잘 가르칠 것이고 개개인의 사정을 파악한 상담도 자상하게 해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오죽하면 김선생을 보고 내가 인품으로 치면 나의 스승이라고 말했을까!

나 혼자 초대를 받았지만 경인일보 편집국장을 지냔 내가 존경하는 향토사학자 이자 수필가 인 이창식 선생님과 함께 나갔다. 이창식 선생님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김영선 선생! 고마워~~~~

카네이션도 받았다. 아무래도 화분에 심어 오래 보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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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숙 선생

약국하는 오연숙 선생 부부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정확하게는 스승의 날 초대이다. 모레는 또 김영선 선생의 초대가 기다리고 있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내가 오선생을 가르친 것은 1981년, 1982년 2년 동안 담임을 하면서 이니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런데 한 해도 거르치 않고 꽃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니 정말 고맙다. 어머니, 아내도 함께 우리 가족 3명이 모두 가서 부군 황상노 선생과 함께 다섯이 그 유명하고 비싼 수원갈비를 먹었다.  아쉽게 사진을 찍는 것을 깜박했다. ㅠㅠ~

먹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오선생 부부는 다음에도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오연숙 선생은 나의 40년 교직 생활을 통해 얻은 최고의 제자다. 그가 더 건강했으면 한다. 내가 기억하는 오선생의 고2, 고3 모습은 아주 건강한 여성이었다.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역시 잘했다.  예의 바른 학생이었지만 할 말은 하는 학생이었다. 선생이 보기에도 아주 멋진 여학생이었다.

吳蓮淑 선생!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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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여주 우거에 가면 맨날 풀만 뽑는데 아내에게 미안했다. 하여 시간을 내서 처음으로 여주에서 가고 싶었던 곳에 갔다. 우선 신륵사에 들렸다.  여주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있다. 이번에 자세히 보았는데 아주 고급한 전통문화재가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보물 226호 신륵사 전탑이다.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시대 전탑이다. 전돌의 횡간 균형이 휘어져 세밀한 조형미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신륵사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남한강 강변에 위치하여 물줄기와 함께 보면 시원함을 더한다.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225  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비견될 만한 아름다운 탑이다. 흰 대리석이 빛나고 기단 부위에 조각이 아름답다.

1층 기단의 몸돌에 물결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2층 기단부의 용무늬 정교하고 아름답다.

소조 아미타여래 삼존불 보물 1791호

목조불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조각 수법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보물 제180호 조사당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가정 오래된 건물로 지공, 나옹, 무학선사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건물을 처음 본 순간 배치에 감격하였다. 주변의 산의 능선과 완전한 합일을 이룬 자연 친화적 건물로 구도가 아주 안정적이었다.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단아하고 고급한 품격이 느껴졌다.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 보물 231호

주재료는 화강암이지만 화사석은 조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부드러운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화려한 장식을 강조한 고려말의 대표적 석등으로 매우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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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

여주 우거에 문패를 달았다. 하수관 직로 공사를 하다가 땅 속에서 바위가 나왔는데 파워셔불 기사에게 화단 위로 옮겨달라고 부탁하였다. 문패로 쓰기 위함이다. 높이가 1m 20cm 정되는  것으로 내 마음에는 조금 못 미치는 크기 이지만 그런대로 쓸만하다.

밤 늦은 시간에 유화물감으로 유화붓으로 내 이름을 썼다.  우체부가 보면 좋아할 것이다. 내 이름이 큼직하게 있으니 알아보기 쉬울 것이다. 한글 이름을 제일 크게 쓰고 한자와 영문을 병기하였다.

쓰고 나니 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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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참배

(수원 정조능과는 달리 영릉은 아주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 좋았다. 석물이 많고 장대하였다)

경기수필가협회 문학기행 중 세종의 무덤 영릉에 들렸다. 세종대왕은 정말 성군이셨다. 밥이 곧 백성이다! 라는 말이 있다.  세종은 어떻게 하든지 백성을 먹이려고 했다.  1분 동안 감사의 묵념을 드렸다.

세종 시대에 발명된 것 중에서 측우기, 해시계, 자격루 등 농사와 관련된 것들이 많다.   당시 농사에 관련 된 책은 모두 중국 것이어서 우리나라 기후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 때 농사직설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농업서가 나왔다.  이 모든 것이 백성의 밥과 관계있는 것이다.

세종시대에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간척사업이 이루어져서 농경지가 넓어진 것도 같은 배경이다.

4군 6진을 설치하여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우리나라 영토를 확정한 것도 세종이며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여 대마도를 조선의 관할 아래 두었다. 사실 대마도는 조선 땅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기간 60번이나 일본에 대마도를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대마도를 지키기 위한 전술이다.

한글 창제를 빼놓을 수 없다.  어린 백성이 억울한 사정이 있어 관청에 이르고자 해도 문자를 모르니 그 뜻을 펼 수 없어 한글을 만든다는 훈민정음 서문은 얼마나 감격적이고 민본적인가!

광광공사 사장을 지낸 독일에서 귀하한 분이 전철에서 한 시간 만에 한글을 깨쳤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머니는 봉사 나온 대학생에게 여름 한 달 공부하고 평생 한글과 함께 하신다. 시집와서 친정어머니에게 편지를 쓰셨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현재 중증 치매인데도 신통하게 한글은 잊지 않으셨다. 신기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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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선생님 방문

4월 24일 경기수필가협회 회원들을 이끌고 이 시대의 문호 이문열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귀한 말씀을 들었다.

내가 경기수필가협회 회장으로 공을 들여 섭외하여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78세의 연세에도 6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처음 모두 발언을 하신 후 우리들의 질문에 답해주시는 식으로 면담은 진행되었다. 나는 질문의 좌장으로 선생님 옆에 앉았다.

사람의 아들을 쓴 배경을 묻자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신앙으로 인하여 무조건 교회에 다닌 이야기와 초등학교 시절 마태복음을 모두 외워서 성경암송대회에서 1등하셨단다. 군대 가기 전 시간이 있어 구약, 신약을 2회 정독하면서 크리스트교 관련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30대 초반에 사람의 아들을 썼다고 하셨다.

나는 십대 시절 신은 있는가? 라는 물음에 답해줄 어른도 없고 고민이 많았을 때 사람의 아들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선생님의 그러한 시도가 훗날 고 최인호 소설가가 유교와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는데 길잡이가 되었을 것이라 말씀드렸다.(최인호의 유림, 최인호의 길 없는 길)

내가 젊은 날 고등학교에서 담임을 맡았을 때 학급문고에 이문열 선생님의 책을 사다 놓고 전체 학급 학생들이 읽도록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매우 기뻐하셨다.

또 선생님의 사람의 아들은 범접하기 어려운 종교를 소설의 장으로 끌어들여 우리나라 소설사에 새로운 시도를 연 혁명적이고 창조적 사건이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림을 그리는 나로서도 죽기 전에 90%를 없앨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금시조 역시 읽고서 감명받았다고 했더니 그 책은 예술에 대한 우리 선조의 혼과 기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선생님의 소설 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내가 감명깊게 읽은 詩人(김삿갓을 다룬 작품)에 대해서도 말쓰렸다.

나는 “선생님은 겨례에게 읽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 라고 말했는데 좌중의 작가들이 모두 박수를 쳐서 놀랐고 나 스스로도 기뻤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소설가가 되셨냐고 물으니 그냥 어찌어찌하다 보니 소설가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매우 겸손한 말씀이셨다. 그러나 사실 맞다.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찌어찌하다 보니 학교도 가고, 직업도 생기고, 배우자도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한 인간의 능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  즉 한계상황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우연이다. 어찌어찌하다가 우연히 우연에 의해 인생의 중요한 방향과 길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건 설명이 안된다.

오늘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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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을 보러갔다.

안도 다다오는 정말 천재다. 고졸로 하버드대 객원교수가 되었으며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노출콘크리트 공법의 아름다움, 그리고 산화철의 붉은 빛이 아름다운 돌붙임 건축도 멋졌다.  입장료가 1인당 23,000원으로 비쌌지만 그래도 안도 다다오를 보았다. 암으로 장기를 다섯 개나 들어낸 그는 살아있는 것이 청춘이다라는 말을 했다.

안도 다다오

건축가Ando Tadao

1941년 9월 13일 생, 일본 오사카

나이

만 83세

도쿄대학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

  1. 프리츠커상 수상

 

 

 

안도 건축가의 푸른 사과는 푸르고 무르지 않은 도전정신, 내면의 젊음, 청춘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의 비법으로 남은 생애도 건축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연·젊은 세대·도시 공간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영원한 청춘’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푸른 사과는 안도가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오브제이다.

“10대, 20대만이 청춘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모두가 청춘이라는 안도의 말과 같이 우리 모두의 청춘이 빛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청춘-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오브제 objet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에서, 자연물이나 일상에서 쓰는 생활용품 따위를 원래의 기능이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분리하여 그대로 독립된 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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