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때 3518명의 전투병을 보내준 나라!

 

경기도의 지방신문 중에서 메이져급 신문은 경기일보, 경인일보, 중부일보 등일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매체에서 내 글을 보면 크게 화를 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오늘 경인일보에 우리학교 기사가 실렸다. 감사한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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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귀국하여 모든 일정을 아들 위주로 짰었다.

이제 아들은 갔다. 아들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들은 긴 여정에 피곤하였을 것이다. 고마웠다.

어제 아버지를 모시고 치과에 다녀왔고 저녁먹고 그냥 잤다.

긴장했었나? 피곤하였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교정을 보니 아름답다. 갤럭시3로 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집에가서 저녁먹고 그리고 휘트니스클럽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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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n left.

아들은 떠났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보내면서 우셨다.

아마도 손자를 마지막으로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나도 아쉬웠다. 그렇지만 아들은 가야한다. 아들은 바람을 가르며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왕복의 먼길에 수고많았다. 고생도 많았다. 고맙구나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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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바람처럼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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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날 동에 와인바에서 이태리 요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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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차를 갖고 가지 않고 수원에서 출발하는 리무진버스를 탔다. 아주 편하고 안락하였다.

올 때도 리무진버스를 타고 왔는데 너무 편하여 잠까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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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하기 직전 아들은 모친과 기념 촬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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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아들이 출국하기 전 날

둘이 경기도 이천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단 둘이 차를 타야 대화가 된다. 3명이 타면 쓸데없는 잡담만 하게 된다.

하여 아들과 둘이서 집을 나서 50km 이상을 달려 이천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토요일이라 영동고속도로도 교통체증으로 차가 밀려 감사하게도 아들과의 대화 시간을 늘려주었다.

집에 돌아와 이야기 하는 도중에 아들은 내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말할  때 부터

차량으로 먼곳으로 이동하면서 아버지가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동안의 경과와 앞으로의 인생계획에 대하여 대화하였다. 모든 것에 난관은 있다. 문제는 어디든 있다.

아들은 자신의 여러가지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 나에게는 늘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하는 면이 있다.

나는 아들에게 어려울 때는 언제든 아버지에게 의지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주 진솔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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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나랏님 수랏상 쌀밥집! 건물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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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짜리를 시켰더니 아들이 18000원짜리 임금님 수랏상으로 먹자고 하여 시켰다.

상을 받고 보니 정말 대단한 상차림이다. ㅎㅎㅎ~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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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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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문학 출판기념회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에서 수원문학 출판기념회가 열려 참석하였다.

수원문학은 1년에 한권 발행하는 문학지로 35년째 발행되고 있는 전통있는 문학지다. 수원문인협회 회원들의 글이 실린다.

시, 소설, 수필, 희곡, 시나리오 등이 실렸다. 내 시도 3편 실렸다.

 

내 그림이 표지화로 실렸다. 나는 사실 화가로는 경기화단에서 수준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표지화는 명망이 높은 전업작가의 그림이 실리는 것이 맞다.

조선 중기의 학자  연천 홍석주(1774~1842)는 그의 저서  ‘학강산필(鶴岡散筆)’에서 “실제보다 넘치는 이름은 사람을 해침이 창보다 날카롭다”고 하였다. 

수원문인협회에서 내가 화가인것을 알고 그림을 내라고 해서 내기는 했지만 분수에 넘치는 일이었다. 경희대 수원캠퍼스 안에 있는 저수지를 그린 것이다. 

 

코리아컨벤션호텔에서  열렸는데 출판 기념회와 작품상,  신인상 수상식도 겸하여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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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은결님이 작품상을 받았다.

은결 시인은 시집을 한번도 내지 않은 시인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치열한 작가정신 때문에 시집을 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내가 은결시인의 시를 읽어보니 절제된 언어 표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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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수상자들이다.  수상 소감을 말하며 울먹이는 여성도 있었다.

신인상을 수상하였다고 문인협회 회원이 금방 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의 활동 결과를 보고 훗날 또 입회 심사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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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조 출연으로  마술 공연 중인 능실중학교 채찬석교장님^-^

 2012년 대한민국교사상을 수상하신 분이다.  

정말 재주도 많으시다!

참석자 모두 재미있어 하였다. 나도 부러웠다.

학교축제 때 학생들 앞에서도 하셨단다.

윤수천 원로 시인님은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눈속임으로 속여도 되느냐고, 거짓말 하는거 아니냐고 조크을 날리셨다. 캬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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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미 불콰해졌다. 남성 분은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예술인협회 회장이신 박병두님이고 내 옆에 여성은 시인으로 생각되는데 미안하지만 누군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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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콰한 내 얼굴이 보인다. ㅋㅋㅋ~

채찬석교장선생님(수필가)이고, 그 옆은  성명순 시인이다.

성명순 시인은 수원예총부설 수원예술학교 교감이고, 수원예술인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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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young arrived at the Incheon airport.

 

아산이가 14시간 비행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탑승 전후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치면 20시간 이상 소요된다. 참으로 긴 여정이다.

그만큼 먼나라에서 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명분으로 귀국을 종용하여 아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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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귀국으로 대문에 태극기를 달았다.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게양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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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에 귀국한 직후에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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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길게 쓰는 법

 

 

오늘 아침 이재정교육감이 주최하는 조찬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집에서 06:00에 나와 행사장인 하이엔드호텔에 6:30에 도착하였다.

방명록에 접수하고 기다리다가 07:00에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나는 중간 쯤에 자리에 앉았다.

80여명 정도 참석했는데 나는 교육계 인사가 주로 참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교육계는 나를 포함하여 4명 뿐이었다.

민선교육감을 실감하였다. 교육계 보다는 언론계, 문화계, 기업가, 정치인들이 더 많았다. 문화계 인사가 제일 많았다.

먼저 김상곤교육감이 한 일을 설명하고 나서 이재정교육감은 자신의 경기교육의 청사진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예산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우거지해장국이 식사로 나왔는데 소갈비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라 맛이 좋았다.

강연회가 끝나고 질의 응답이 있었으며 차를 몰고 학교에  출근하였다.

조찬모임을 갖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모임을 마치고도 아직도 아침이니 하루를 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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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앞에 보이는 젊은 여성 두명은 신문 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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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었다.

사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었다.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데도 낯설다. 처음 읽은 책처럼 스토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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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좋은 글귀를 적어본다.

 

제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 지요? 늘 마음에 밀알처럼 품고 있던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은 다행입니다. 당신이 내게 있을 때는 내게 세상은 친숙하고 걱정 없어 보였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 육체를 지닌 인간이 어떤 자세를 가장 많이 취하느냐로 변해간다.

여인의 육체는 재래식 부엌모양을 연상시켰다. 겨우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을 다듬거나

감자를 깎거나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넣느라 수없ㅣ 오르리고 폈을 그녀의 등은 하늘색 투피스 속에서 적막한 마을의 능선처럼 굽어 있었다.

부친은 여일하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여일 如一

처음부터 끝까지 꼭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굳이 이런 한자표현을 해야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언니는 참 아름다웠다. 처녀들의 연약함과 자존심, 총명함을 두루지니고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윤정은 선생님을 생각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좀 이상하다는 것을 맨 처음 눈치챈 것도 언니였다.

된장국에 풀어넣은 멸치 냄새가 정답게 집안을 흔들고 있다.

미란은 나뭇잎 한 장처럼 조그많게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다.

권태로운 여름 볕이 서류더미가 쌓인 남자의 알루미늄 책상에 스멀거렸다.

 

설핏 잠이 깰 적마다 나는 그의 손을 찾아 쥐고 그의 턱에 내 뺨을 갖다 댔다. 그런 어떤 순간에 내 마른 입술에 그가 입술을 갖다 댔다.

그의 입술은 따뜻했다. 나는 몸을 뒤척여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내 가슴을 찾아 쥐었다. 그의 몸이 내 몸 같다. 우리는 빗소를 들으며 한번 더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 들었다.

당신 몸이 내 몸 같아. 그가 중얼거렸다. 사람의 몸이 이처럼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지.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경숙(1963년 1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정읍에서 보냈으나,

 1979년 구로공단 근처의 전기회사에 취직하여,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산업체특별학급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약 스타 작가로 도약, 등단 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발간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미국, 영국, 폴란드 등의 22개국에서 출판되었다.

1999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자 시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시인)와 결혼]하였다.

 

이 책은 여대생이 군사정권시절 야학에서 불우한 청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남자 친구와 음악다방에서 만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이태리 노래를 자주 신청한다.

원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이탈리아 좌파 운동권의 노래다. 나도 많이 들어 귀에 익숙한 노래다.

운동권으로 몰려 남자친구의 소재를 대라는 경찰에게 머리채를 쥐어 뜯기고 정강이를 구둣발로 얻어맞는다.

경찰은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무슨 암호냐고 묻는다. 구둣발에 채이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여주인공은 기억을 잃는다.

소설은 여주인공이 자신이 누군지 그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적고 있다.

 

신경숙……훌륭한 작가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정말 많은 책을 썼다.  나도 좋아하는 작가다.

다만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할말이 좀 있다. 1963년 생이면 1979년 10.26 때 16살이다. 민주화의식을 갖기에는 어린 나이다.

 10.26 이후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시절을 16살 나이로 시작하였다면 어린 나이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을 나는 민주투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투사라면 박정희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투사다.

 내 젊은 날, 나는 박정희를 싫어했다. 그러니 지금 박정희에 대한 나의 개인적 평가는 많이 변했다

억눌인 자유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다시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박정희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저항적이었다.

내가 박정희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24살의 나이로 모금 운동에 참여한 것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내 젊은 날에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빅정희 대통령이 백성을 얼마나 먹이고 싶었으면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을까!

지구상에 백성의 배고품을 이토록 고민한 지도자가 박정희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개나 소나 다 데모를 했다. 할만했으니까! 그러나 박정희 독재는 달랐다.

나는 젊은 시절 박정희 통치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두 시대의 차이를 피부,로 경험으로, 역사로 알고 있다.

박정희시대는 감히 민주화를 입에 담기 어려웠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만이 목숨을 걸로 민주화를 외쳤다.

그래서 그 두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10.26으로 박정희가 죽으니

천지사방에서 민주화투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꼴이라니…..나는 그꼴을 보았다.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1980년대 10대를 보내면서 군사정권의 압제를 보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역시 나는 인정하기 어렵다. 10대면 어린 나이고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래도 견딜만 했다.

불러다 사람 두들겨 패고 정신을 잃고 기억상실증에 걸릴정도로 사람을 다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사실이 당시에 보통으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책의 느낌은 나치 하의 폴란드나 김일성 김정일 하의 북한 실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내가 20대의 나이로 겪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박정철 고문치사 사건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숨도 못쉬는 그런 사회는 아니었다.

박범신의 책을 봐도 이런 느낌이 드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 이런 책에서, 이런 생각에서 자유롭고 싶다.

좀더 높은 이상의 세계로, 평화와 봉사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올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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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파란투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작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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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스 테오도라키스( 1925년 7월 29일 ~ , 그리스 히오스 섬 태생)

그리스의 대중적인 음악가이다. 그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1964년), Z(1969년), 세르피코(1973년)에 들어간 그의 음악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1970년대 말까지 그는 좌파 성향을 보였으나, 1990년 그는 중도 우파 신민주당 의원이 되었다.

자신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테오도라키스는 후회한다면서도 한편으로 국가에는 정치적 위기를 막기 위한 질서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계속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며, 침략자에 대해 성토한다.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 팔레스타인 문제, 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나와있다.

그는 늘 억압적인 정권에 반대해왔으며, 1967년에서 1974년까지 지속된 그리스 독재 정권에 대한 주요 비판자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대통령 후보자로 거명되기도 했으나 이에 거부했다.

 

카테리니행 열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사 전문(신경숙 번안)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리키스

(Mikis Theodorakis의 작품으로, 그는 이 노래를 작곡한 지 얼마 안 되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국외추방을 당한다.

우리에게는 sbs의 드라마 <백야>의 주제가로, 또 조수미가 불러 친숙해진 노래인데, 비장하면서도 애절한 가락에 카테리니라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를 애인으로 둔 한 그리스 여성의 이별가다.

11월의 어느 기차역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카테리니로 가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애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잡혀서 투옥되거나, 아니면 계속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하거나 간에 어쨌든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난 시간과 공간인 이 11월과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원곡의 가사에는 그가 “비밀을 간직한 채”, “가슴에 칼을 품고서” 떠났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는 1974년 민주화되기까지 밖으로는 외세의 압박과 안으로는 왕정과 군부독재의 철권통치로 신음해 왔던 나라다.

이러한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테네 음악원의 학생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청년운동을 시작하여

 수차례나 투옥됨으로써 그리스 현대사의 한 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종전 후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내전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의 승리로 끝나자 테오도라키스는

귀국 후 그리스 민속음악인 람베티카를 기본으로 민중의 정서를 담은 수많은 가요를 만들었다.

람베티카는 “하층민으로부터”라는 그 뜻이 말해 주듯 피억압계층의 민요이다.

이 람베티카가 테오도라키스에 의해 저항가요로 부활하자 군부독재는 이를 금지시켰고,

그러자 람베티카는 다시 지하클럽에서 청년계층에 의해 새 노래운동인 네오 키마(Neo Kima)로 발전하게 된다.

 

1963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람브라키스가 한 괴한에게 암살당하자 테오도라키스는 람브라키스민주청년회(Lambrakis Democratic Youth)를 조직하고

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나간다. 1967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테오도라키스를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하였다.

출판과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해 테오도라키스의 작품판매와 방송은 물론 그의 작곡, 지휘, 연주를 포함해 그의 음악을 듣는 것까지도 금지시켜 버렸다.

 테오도라키스는 체포되어 국외망명의 길에 올랐고, 군정이 끝나고 민정으로 이양된 1974년까지 장장 7년간이라는 세월을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다.

 

1992년 모든 공직을 사임한 테오도라키스는 작곡과 지휘에 전념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1996년 그리스와 터기 양국 간 영토분쟁으로 전운이 감돌 때,

 터키의 대표적 음악인 줄푸 리바넬리와 함께 평화지대인 사이프러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음악회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줄푸 리바넬리 역시 테오도라키스와 같은 시기에 터키에서 추방당했었고, 이들 두 사람은 해외에서 유랑생활 중 만나 자연스럽게 우정을 다져왔었다.

 

1967년 4월21일 새벽, 그리스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비틀즈를 비롯한 서양음악과 축구, 미니스커트, 심지어는 그리스 남성의 상징인 콧수염을 기르는 것까지 금지할 정도로 모든 자유가 억압당하고,

예술가들은 군부의 탄압으로 설 곳을 잃었고, 타의로 자의로 조국을 떠나게 된다.

 

 

마리아 파란토리 (Maria Farantouri) 가수 출생1947년 1월 14일 (만 67세), 그리스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마리아 파란토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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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여가수 마리아 파란두리는 테오도라키스의 투옥에 항거하다 추방된 후 조국을 떠나 세계각지를 순회하며 노래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호소하게 된다다.

1975년 7년간의 군부독재가 종식되자 귀국 음악 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그 제일 중심의 가수는 마리아 파란두리였다.

이후 그녀는 그리스 민속음악과 다른 장르의 결합을 시도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터키와의 평화를 위한 콘서트의 진행 등 결합과 평화를 위한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르죠. 그러나 저는 과거의 일들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작품의 바탕은 다 과거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은 한 나라의 영혼이고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음악의 초상이고, 저는 단적으로 그런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게 있어 음악은 아주 중요합니다. 가족처럼 말이죠.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기도하면서, 국경일에도 늘 노래를 해왔습니다. 저는 자유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스 자유의 상징이라는 그녀의 말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이 노래의 가사처럼, 11월 어느날 밤의 쓸쓸한 기차역을 떠올리게 하는 부주키(그리스의 민속 현악기–만도린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의 애잔한 반주에 맞춰 파란두리는 촛불이 꺼져가듯 침침한 음색으로, 돌아오지 않는 레지스탕스를 기다리는 여심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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