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아들이 출국하기 전 날

둘이 경기도 이천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단 둘이 차를 타야 대화가 된다. 3명이 타면 쓸데없는 잡담만 하게 된다.

하여 아들과 둘이서 집을 나서 50km 이상을 달려 이천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토요일이라 영동고속도로도 교통체증으로 차가 밀려 감사하게도 아들과의 대화 시간을 늘려주었다.

집에 돌아와 이야기 하는 도중에 아들은 내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말할  때 부터

차량으로 먼곳으로 이동하면서 아버지가 대화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동안의 경과와 앞으로의 인생계획에 대하여 대화하였다. 모든 것에 난관은 있다. 문제는 어디든 있다.

아들은 자신의 여러가지 어려움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 외국에 나가 나에게는 늘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하는 면이 있다.

나는 아들에게 어려울 때는 언제든 아버지에게 의지하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주 진솔하고 진지한 대화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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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착한 나랏님 수랏상 쌀밥집! 건물도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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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원짜리를 시켰더니 아들이 18000원짜리 임금님 수랏상으로 먹자고 하여 시켰다.

상을 받고 보니 정말 대단한 상차림이다. ㅎㅎㅎ~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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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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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문학 출판기념회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에서 수원문학 출판기념회가 열려 참석하였다.

수원문학은 1년에 한권 발행하는 문학지로 35년째 발행되고 있는 전통있는 문학지다. 수원문인협회 회원들의 글이 실린다.

시, 소설, 수필, 희곡, 시나리오 등이 실렸다. 내 시도 3편 실렸다.

 

내 그림이 표지화로 실렸다. 나는 사실 화가로는 경기화단에서 수준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표지화는 명망이 높은 전업작가의 그림이 실리는 것이 맞다.

조선 중기의 학자  연천 홍석주(1774~1842)는 그의 저서  ‘학강산필(鶴岡散筆)’에서 “실제보다 넘치는 이름은 사람을 해침이 창보다 날카롭다”고 하였다. 

수원문인협회에서 내가 화가인것을 알고 그림을 내라고 해서 내기는 했지만 분수에 넘치는 일이었다. 경희대 수원캠퍼스 안에 있는 저수지를 그린 것이다. 

 

코리아컨벤션호텔에서  열렸는데 출판 기념회와 작품상,  신인상 수상식도 겸하여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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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은결님이 작품상을 받았다.

은결 시인은 시집을 한번도 내지 않은 시인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치열한 작가정신 때문에 시집을 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내가 은결시인의 시를 읽어보니 절제된 언어 표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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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수상자들이다.  수상 소감을 말하며 울먹이는 여성도 있었다.

신인상을 수상하였다고 문인협회 회원이 금방 되는 것은 아니고 앞으로의 활동 결과를 보고 훗날 또 입회 심사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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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조 출연으로  마술 공연 중인 능실중학교 채찬석교장님^-^

 2012년 대한민국교사상을 수상하신 분이다.  

정말 재주도 많으시다!

참석자 모두 재미있어 하였다. 나도 부러웠다.

학교축제 때 학생들 앞에서도 하셨단다.

윤수천 원로 시인님은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을 눈속임으로 속여도 되느냐고, 거짓말 하는거 아니냐고 조크을 날리셨다. 캬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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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미 불콰해졌다. 남성 분은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예술인협회 회장이신 박병두님이고 내 옆에 여성은 시인으로 생각되는데 미안하지만 누군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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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콰한 내 얼굴이 보인다. ㅋㅋㅋ~

채찬석교장선생님(수필가)이고, 그 옆은  성명순 시인이다.

성명순 시인은 수원예총부설 수원예술학교 교감이고, 수원예술인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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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young arrived at the Incheon airport.

 

아산이가 14시간 비행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탑승 전후에 소요되는 시간까지 합치면 20시간 이상 소요된다. 참으로 긴 여정이다.

그만큼 먼나라에서 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명분으로 귀국을 종용하여 아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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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귀국으로 대문에 태극기를 달았다.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게양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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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에 귀국한 직후에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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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길게 쓰는 법

 

 

오늘 아침 이재정교육감이 주최하는 조찬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집에서 06:00에 나와 행사장인 하이엔드호텔에 6:30에 도착하였다.

방명록에 접수하고 기다리다가 07:00에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나는 중간 쯤에 자리에 앉았다.

80여명 정도 참석했는데 나는 교육계 인사가 주로 참석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교육계는 나를 포함하여 4명 뿐이었다.

민선교육감을 실감하였다. 교육계 보다는 언론계, 문화계, 기업가, 정치인들이 더 많았다. 문화계 인사가 제일 많았다.

먼저 김상곤교육감이 한 일을 설명하고 나서 이재정교육감은 자신의 경기교육의 청사진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예산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우거지해장국이 식사로 나왔는데 소갈비를 넣어 끓인 해장국이라 맛이 좋았다.

강연회가 끝나고 질의 응답이 있었으며 차를 몰고 학교에  출근하였다.

조찬모임을 갖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모임을 마치고도 아직도 아침이니 하루를 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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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앞에 보이는 젊은 여성 두명은 신문 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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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의 장편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읽었다.

사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다시 읽었다.

한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데도 낯설다. 처음 읽은 책처럼 스토리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늙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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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좋은 글귀를 적어본다.

 

제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 지요? 늘 마음에 밀알처럼 품고 있던 말입니다.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만난 것은 다행입니다. 당신이 내게 있을 때는 내게 세상은 친숙하고 걱정 없어 보였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 육체를 지닌 인간이 어떤 자세를 가장 많이 취하느냐로 변해간다.

여인의 육체는 재래식 부엌모양을 연상시켰다. 겨우 서른일곱이라는 나이에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콩나물을 다듬거나

감자를 깎거나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넣느라 수없ㅣ 오르리고 폈을 그녀의 등은 하늘색 투피스 속에서 적막한 마을의 능선처럼 굽어 있었다.

부친은 여일하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여일 如一

처음부터 끝까지 꼭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굳이 이런 한자표현을 해야하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언니는 참 아름다웠다. 처녀들의 연약함과 자존심, 총명함을 두루지니고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윤정은 선생님을 생각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좀 이상하다는 것을 맨 처음 눈치챈 것도 언니였다.

된장국에 풀어넣은 멸치 냄새가 정답게 집안을 흔들고 있다.

미란은 나뭇잎 한 장처럼 조그많게 웅크리고 잠이 들어 있다.

권태로운 여름 볕이 서류더미가 쌓인 남자의 알루미늄 책상에 스멀거렸다.

 

설핏 잠이 깰 적마다 나는 그의 손을 찾아 쥐고 그의 턱에 내 뺨을 갖다 댔다. 그런 어떤 순간에 내 마른 입술에 그가 입술을 갖다 댔다.

그의 입술은 따뜻했다. 나는 몸을 뒤척여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가 내 가슴을 찾아 쥐었다. 그의 몸이 내 몸 같다. 우리는 빗소를 들으며 한번 더 서로의 몸 속으로 파고 들었다.

당신 몸이 내 몸 같아. 그가 중얼거렸다. 사람의 몸이 이처럼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었는지. 그와 동시에 나는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경숙(1963년 1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정읍에서 보냈으나,

 1979년 구로공단 근처의 전기회사에 취직하여,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산업체특별학급에 진학하면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우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 출간된 《풍금이 있던 자리》가 평단과 독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약 스타 작가로 도약, 등단 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발간된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미국, 영국, 폴란드 등의 22개국에서 출판되었다.

1999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자 시인, 문학평론가인 남진우(시인)와 결혼]하였다.

 

이 책은 여대생이 군사정권시절 야학에서 불우한 청소년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남자 친구와 음악다방에서 만나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이태리 노래를 자주 신청한다.

원래 기차는 7시에 떠나네는 이탈리아 좌파 운동권의 노래다. 나도 많이 들어 귀에 익숙한 노래다.

운동권으로 몰려 남자친구의 소재를 대라는 경찰에게 머리채를 쥐어 뜯기고 정강이를 구둣발로 얻어맞는다.

경찰은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무슨 암호냐고 묻는다. 구둣발에 채이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여주인공은 기억을 잃는다.

소설은 여주인공이 자신이 누군지 그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적고 있다.

 

신경숙……훌륭한 작가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의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정말 많은 책을 썼다.  나도 좋아하는 작가다.

다만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할말이 좀 있다. 1963년 생이면 1979년 10.26 때 16살이다. 민주화의식을 갖기에는 어린 나이다.

 10.26 이후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시절을 16살 나이로 시작하였다면 어린 나이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을 나는 민주투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민주투사라면 박정희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투사다.

 내 젊은 날, 나는 박정희를 싫어했다. 그러니 지금 박정희에 대한 나의 개인적 평가는 많이 변했다

억눌인 자유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다시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박정희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저항적이었다.

내가 박정희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24살의 나이로 모금 운동에 참여한 것을 보면 지금 생각해도 내 젊은 날에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빅정희 대통령이 백성을 얼마나 먹이고 싶었으면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을까!

지구상에 백성의 배고품을 이토록 고민한 지도자가 박정희말고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에는 개나 소나 다 데모를 했다. 할만했으니까! 그러나 박정희 독재는 달랐다.

나는 젊은 시절 박정희 통치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두 시대의 차이를 피부,로 경험으로, 역사로 알고 있다.

박정희시대는 감히 민주화를 입에 담기 어려웠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만이 목숨을 걸로 민주화를 외쳤다.

그래서 그 두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이 두려워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10.26으로 박정희가 죽으니

천지사방에서 민주화투사를 자처하고 나서는 꼴이라니…..나는 그꼴을 보았다.

 이런 류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1980년대 10대를 보내면서 군사정권의 압제를 보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역시 나는 인정하기 어렵다. 10대면 어린 나이고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래도 견딜만 했다.

불러다 사람 두들겨 패고 정신을 잃고 기억상실증에 걸릴정도로 사람을 다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사실이 당시에 보통으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책의 느낌은 나치 하의 폴란드나 김일성 김정일 하의 북한 실상을 떠올리게 하는데 내가 20대의 나이로 겪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박정철 고문치사 사건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숨도 못쉬는 그런 사회는 아니었다.

박범신의 책을 봐도 이런 느낌이 드는 대목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 이런 책에서, 이런 생각에서 자유롭고 싶다.

좀더 높은 이상의 세계로, 평화와 봉사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올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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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파란투리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작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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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스 테오도라키스( 1925729~ , 그리스 히오스 섬 태생)

그리스의 대중적인 음악가이다. 그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1964), Z(1969), 세르피코(1973)에 들어간 그의 음악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1970년대 말까지 그는 좌파 성향을 보였으나, 1990년 그는 중도 우파 신민주당 의원이 되었다.

자신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테오도라키스는 후회한다면서도 한편으로 국가에는 정치적 위기를 막기 위한 질서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그는 계속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며, 침략자에 대해 성토한다.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 팔레스타인 문제, 이라크 전쟁, 키프로스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나와있다.

그는 늘 억압적인 정권에 반대해왔으며, 1967년에서 1974년까지 지속된 그리스 독재 정권에 대한 주요 비판자이기도 했다.

그는 그리스 대통령 후보자로 거명되기도 했으나 이에 거부했다.

 

카테리니행 열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당신은 오지 못하리/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사 전문(신경숙 번안)

 

이 노래는 그리스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음악가인 미키스 테오도리키스

(Mikis Theodorakis의 작품으로, 그는 이 노래를 작곡한 지 얼마 안 되어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국외추방을 당한다.

우리에게는 sbs의 드라마 <백야>의 주제가로, 또 조수미가 불러 친숙해진 노래인데, 비장하면서도 애절한 가락에 카테리니라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별의 노래가 아니라 반독재 민주화운동가를 애인으로 둔 한 그리스 여성의 이별가다.

11월의 어느 기차역에서 애인을 만나기로 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카테리니로 가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애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 그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잡혀서 투옥되거나, 아니면 계속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하거나 간에 어쨌든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떠난 시간과 공간인 이 11월과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원곡의 가사에는 그가 비밀을 간직한 채”, “가슴에 칼을 품고서떠났다고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는 1974년 민주화되기까지 밖으로는 외세의 압박과 안으로는 왕정과 군부독재의 철권통치로 신음해 왔던 나라다.

이러한 그리스의 암울했던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사람이 바로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테네 음악원의 학생으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청년운동을 시작하여

 수차례나 투옥됨으로써 그리스 현대사의 한 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종전 후 왕당파와 공화파 간의 내전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왕당파의 승리로 끝나자 테오도라키스는

귀국 후 그리스 민속음악인 람베티카를 기본으로 민중의 정서를 담은 수많은 가요를 만들었다.

람베티카는 하층민으로부터라는 그 뜻이 말해 주듯 피억압계층의 민요이다.

이 람베티카가 테오도라키스에 의해 저항가요로 부활하자 군부독재는 이를 금지시켰고,

그러자 람베티카는 다시 지하클럽에서 청년계층에 의해 새 노래운동인 네오 키마(Neo Kima)로 발전하게 된다.

 

1963년 민주화운동의 지도자 람브라키스가 한 괴한에게 암살당하자 테오도라키스는 람브라키스민주청년회(Lambrakis Democratic Youth)를 조직하고

의장으로서 민주화운동을 주도해나간다. 1967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테오도라키스를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추방하였다.

출판과 언론에 대한 검열도 강화해 테오도라키스의 작품판매와 방송은 물론 그의 작곡, 지휘, 연주를 포함해 그의 음악을 듣는 것까지도 금지시켜 버렸다.

 테오도라키스는 체포되어 국외망명의 길에 올랐고, 군정이 끝나고 민정으로 이양된 1974년까지 장장 7년간이라는 세월을 해외에서 떠돌아야 했다.

 

1992년 모든 공직을 사임한 테오도라키스는 작곡과 지휘에 전념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인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1996년 그리스와 터기 양국 간 영토분쟁으로 전운이 감돌 때,

 터키의 대표적 음악인 줄푸 리바넬리와 함께 평화지대인 사이프러스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공동음악회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줄푸 리바넬리 역시 테오도라키스와 같은 시기에 터키에서 추방당했었고, 이들 두 사람은 해외에서 유랑생활 중 만나 자연스럽게 우정을 다져왔었다.

 

1967421일 새벽, 그리스는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비틀즈를 비롯한 서양음악과 축구, 미니스커트, 심지어는 그리스 남성의 상징인 콧수염을 기르는 것까지 금지할 정도로 모든 자유가 억압당하고,

예술가들은 군부의 탄압으로 설 곳을 잃었고, 타의로 자의로 조국을 떠나게 된다.

 

 

마리아 파란토리 (Maria Farantouri) 가수 출생1947114(67), 그리스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마리아 파란토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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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여가수 마리아 파란두리는 테오도라키스의 투옥에 항거하다 추방된 후 조국을 떠나 세계각지를 순회하며 노래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호소하게 된다다.

19757년간의 군부독재가 종식되자 귀국 음악 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렸는데 그 제일 중심의 가수는 마리아 파란두리였다.

이후 그녀는 그리스 민속음악과 다른 장르의 결합을 시도하는 한편, 역사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터키와의 평화를 위한 콘서트의 진행 등 결합과 평화를 위한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간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르죠. 그러나 저는 과거의 일들을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작품의 바탕은 다 과거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은 한 나라의 영혼이고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음악의 초상이고, 저는 단적으로 그런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게 있어 음악은 아주 중요합니다. 가족처럼 말이죠. 음악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기도하면서, 국경일에도 늘 노래를 해왔습니다. 저는 자유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스 자유의 상징이라는 그녀의 말이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이 노래의 가사처럼, 11월 어느날 밤의 쓸쓸한 기차역을 떠올리게 하는 부주키(그리스의 민속 현악기만도린과 비슷한 소리를 낸다)

의 애잔한 반주에 맞춰 파란두리는 촛불이 꺼져가듯 침침한 음색으로, 돌아오지 않는 레지스탕스를 기다리는 여심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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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SK아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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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SK아트리움 전경>

 

어제 저녁 7:30에 수원SK아트리움에서 열린 수원시립합창단 연주회에 다녀왔다.

수원시립합창단은 세계 정상의 하모니 그리고 최고의 합창음악을 지향하고 있다.

1983년 창단되어 1000여회의 공연을 가졌으며 세계합창심포지엄에 참여하였고, 바흐페스티벌 참여,

영국 버밍햄 심포니홀 공연 등으로 세계속의 합창단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는 합창단이다.  

공연장도 훌륭했고 주차장도 아주 좋았다.

수원시립합창단, 난파합창단, 정자초등학교합창단, 가온누리합창단 등이 함께 공연하였다.

함께 간 집사람도 좋아했다.  사실 아내는 합창을 듣는 중간에 티슈로 눈물을 훔쳤다. 어쩌면 감수성이 그렇게 좋을까!

하여튼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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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합창단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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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줄줄 외웠던……

 

 

나의 젊은 시절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줄줄 외웠었다. 오랜만에 낭송해본다. 말미는 많이 잊었다.

가수 박인희의 낭송이 유명하다. 그녀의 낭송은  건조하고 간결하게 절제된 언어가  압권이다. 그녀는 어디서 무얼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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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926.8.15일 강원도 인제 출생, 1956. 3. 20졸, 서구적 감수성과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어두운 현실을 서정적으로 읊은 후기 모더니즘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1939년 서울 덕수초등학교를 마쳤다.

이어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해방이 되자 학업을 중단했다.

서울로 와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여러 시인들과 사귀었고, 서점을 그만두고는 〈자유신문〉·〈경향신문〉 기자로 근무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하고 피난지 부산에서 김규동·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 대한해운공사에서 일하면서 미국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심장마비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1946년 〈국제신보〉에 시 〈거리〉를 발표해 문단에 나온 뒤 〈남풍〉(신천지, 1947. 7)·〈지하실〉(민성, 1948. 3) 등을 발표하고,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 등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합동 시집을 펴냈다.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 〈검은 강〉·〈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했는데,

이들 시는 8·15해방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도시문명의 불안과 시대의 고뇌를 감성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는

그의 시의 특색을 잘 보여주면서도 참신하고 감각적 면모와 지적 절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1955년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생전에 〈박인환 시선집〉(1955)이 나왔고, 이어 〈목마와 숙녀〉(1976) 등이 발행되었다.

 

죽기 1주일 전에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뒤에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고 있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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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목마와 숙녀”에 대하여

 

박인환 “목마와 숙녀”에 대하여
모든 떠나간 것들에 대한 애상과 그리움
박인환(1926-1956)은 김수영(1921-1968), 김경린(1918- ), 조향(1917- )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시의 특징은 6.25 전쟁 이후에 널리 퍼진 허무주의와 상실감을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렸다는 데 있다.
그 가운데 박인환은 가장 감성적인 기질을 가진 시인으로, 비애와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하여, 자기 체념적 감상주의에 빠져 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목마와 숙녀”에는 이러한 그의 기질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목마’는 순수와 동심을 상징하는 시어이며, ‘숙녀’는 뒤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1882-1941)를 가리킨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작중 인물의 심리를 논리적인 맥락에 구애 받지 않고 그대로 파악하여 묘사하려는 수법)에 중점을 둔 내면 묘사의 글을 주로 쓴 영국의 여류 소설가이다. 그녀는 “등대로”, “세월” 등의 소설을 남기고, 제 2차 세계 대전이 가져온 정신적 중압에 견디지 못했음인지 투신 자살로 생애를 끝마쳤다. 이러한 비극적 생애의 인물과 떠나간 목마, 늙어 버린 소녀, 작별, 쓰러진 술병,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등대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는 시들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哀想-슬픈 생각)과 비탄의 노래가 된다.
그러기에 그는 1950년대를 목마가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난 불안한 절망적인 시대로 인식한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린 시대인 것이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통속(通俗)’하다는 구절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의 쓰라린 독백이다.
즉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무너진 황량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딘가에 호소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마침내 이 시는 ‘내 쓰러진 술병’으로 끝을 맺는데, 이 마지막 행은 삶에 대한 그의 비관적 태도가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는 행이라 할 수 있다.
약간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우면서도 애상이 서려 있는 이 시는 이처럼 모든 떠나간 것들에 대한 허무와 그리움을 감각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한 잔의 술, 버지니아 울프, 목마, 숙녀, 방울 소리, 애증의 그림자, 가을 바람 소리 등과 같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들은 박인환의 짧은 생애만큼이나 우리들에게 애처롭고 안타까운 느낌을 준다.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Stephen

 

출생

1882년 1월 25일(1882-01-25)
영국 런던

 

사망

1941년 3월 28일 (59세)
영국 이스트서식스 루이스

 

직업

소설가, 수필가, 발행자, 비평가

 

주요 작품

등대로, 댈러웨이 부인
올랜도: 전기, 나만의 방

 

배우자

레너드 울프 (1912년 ~ 1941년)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 울프(Adeline Virginia Stephen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은 20세기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이다. 울프는 의식의 흐름 장르를 탄생시키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울프의 결혼 전 이름은 아들린 버지니아 스테판이며,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테판은 《18세기에 있어서의 문학과 사회》의 작가였으며, 어머니는 줄리아 덕워스이다. 버지니아는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를 이용할 수 있었다. 1895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울프는 최초의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1897년,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역사학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04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울프는 두 번째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투신자살시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12년 레오나드 울프와 결혼하고 1915년항해》을 출판한 뒤 1919년에는 《밤과 낮》을 간행했다. 1925년에는 《댈러웨이 부인》이 큰 인기를 받았고 1927년에는 《등대로》, 1928년에는 《올랜도》가 호평을 받았다. 1941년 3월 28일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다. 이틀뒤에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었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허탈감과 환청,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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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렸네^-^

 

SAM_1807.JPG

 

SAM_1806.JPG

3학년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점묘화를 공부하고 연습하였는데 그 결과물을 학교 중앙현관에 전시하였다.

어떤 학생이 내 얼굴을 그렸는데 제법 특징을 잘 살려 그렸다.

 미술선생님 이야기로는 그 학생이 교장을 좋아해서 그렸다고 한다. ㅎㅎㅎ~

재미있어 여기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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