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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개 리트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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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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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이승만의 정적 장면이 쓴 이승만 전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어제 이승만 바로보기라는 책을 읽었다. 30년 전에 읽은 책만 못하다. 다시 구해 읽었으면 좋겠다.

이승만은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였다. 조선말 과거시험이 매관매직으로 전락한 터여서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소용없었다.

이승만은 실망하고 방향을 돌려 머리를 깎고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공부한다.

외국인 교사의 한국어가정교사를 하면서 배재학당에 다녔고 입학한지 6개월만에 배재학당의 영어교사가 된다.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서재필이 조지간 독렵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나중에 독립신문의 주필까지 역임한다.

독립협회는 만민공동회를 주최하고 고종에게 일본의 세력을 떨치도록 건의한다. 왜놈들은 보부상을 중심으로한 황국협회를 조직하여 독립협회를 탄압한다.

급기야는 황국협회 사람들이 이승만이 고종을 폐위하려한다고 모함하여 이승만은 한성감옥에 갇히게 된다.

한글학자인 주시경이 육혈포를 구해주어 탈옥을 감행하지만 실패하고 종신형을 받게 된다.

6년동안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영어성경을 공부하고 선교사들이 들여보내준 책으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또 교도소에 도서실을 설치하고 죄수들에게 영어와 한글을 가르친다.

6년 옥살이 후 민영환의 건의로 석방되며 민영환에 의해 고종의 밀서를 갖고 미국에 가서

미국대통령을 만나 미국이 일본의 부당한 간섭을 막는 역할을 해줄것을 촉구하는 밀명을 띠고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간다.

미국에 가서 미국대통령을 만났으나(만나기 전날 을사늑약 체결로 만나지 못했다는 설도 있음)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배재학당 선교사 출신 미상원의원의 배려로 조지워싱턴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조지워싱턴대학에서 학사를 마치고

하바드대학에서 석사를 했으며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논문제본비용 80달러가 없어 논문을 발간하지 못하고

훗날 논문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여러대학에서 교수로 임용시키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그 때부터 미국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활동한다.

상해임시정부에의해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평생 지론인 외교로 독립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전에 미국은 소련을 연합국에 끌어들이면서, 또 중국에서 국공합작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은 해방 후 한국에서의 정부도 좌우합작 정부가 될것을 희망했으나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인물이었기에 반대하였다.

이에 해방 후에도 미국은 이승만에게 여권을 내주지 않는 등 이승만의 대한민국 입국을 방해했다.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은 것이어서 빨갱이와 타협이나 협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승만은 철저한 반공주의자 였다

군정이후 북한에서 먼저 김일성에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남한에서 5.10총선거가 실시될 때

이승만은 한때 민족화합을 위해 좌우를 아우르는 정부를 세우는데 합의하기도 했으나 이후 김구와 함께 자유민주주의 단독정부를 수립하는데 합의하였다.

이후 김구과 의견이 대립되어 5.10총선거를 앞두고 이를 막기 위해 김구와 김규식이 휴전선을 넘어 김일성을 만나러 갈 때

이승만은 만나려면 스탈린을 만나야지 김일성을 백날 만나보았자 무슨 소용있나? 라고 말했다.

김구은 김일성을 만나 실컷 선전에 이용당하고 아무 소득없이 내려왔다. 그리고 5.10총선거가 실시되었으며

200명의 제헌국회의원이 대통령을 간선 할때 이승만 180표, 김구11표가 나왔다. 이것만 보더라고 이승만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는 외교로 독립을, 김구는 힘을 길러 일본을 이기자는 것이었으며(일본에서 보면 김구는 오사마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다),

안창호는 백성을 교육시켜야 독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승만은 두번이나 헌법을 고쳤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에 최대의 오명이다. 그는 6대 독자였다. 아마도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원래 이름은 이승룡 이었는데 이승만으로 고쳤다. 늦게 이씨 왕조를 잇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책도 있다.(30년 전에 읽은 장면 지음)

내 생각에 사사오입개헌에 이은 3.15부정선거와 4.19의거 등의 오욕이 있다 해도 그는 우리나라 국부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4.19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선거만해도 그렇다.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은 위암 수술차 미국으로 가서 선거정에 죽었으니 대통령선거는 해보나 마나 이승만의 당선이었다.

그런데 야당 장면을 떨어트리고 자유당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3.15부정선거를 저지를 것이었다.

내 생각은 선거지휘의 책임은 이승만에게 있지만 이기붕이가 원흉이라는 뜻이다.

공산당의 침략을 무찌르고 정부를 안전하게 지켜낸 것이야말로 이승만의 공이다.

아직도 6.25가 북침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이미 1990년대 중반 공개된 소련의 비밀문서에 의해 6.25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사주를 받은 북한 김일성의 침략이라고 밝혀졌는데 그 사람들 신문도 안보나?

6.25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되었다. 원래 우리나라는 전쟁에 침략의 주체를 명시해서 부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신미양요 등이 그것이다.

코리안WAR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다. 침략의 주체를 표시해야한다. ‘북한의6.25남침전쟁’   이 맞는 표현이다.

전세계에서 소련과 국경을 같이하고 소련제 탱크로 침략당한 나라 중에서 공산화 되지 않는 국가는 남한이 유일하다.

6.25북한의 남침 때 미군사고문단 500명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미군의 파병을 요구했던 배짱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으며

반공포로를 과감하게 석방한 일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통일을 누구보다도 바랐으며 결코 휴전협정에 도장찍지 않았다.

미군 35000명이 전사하는 등 피해가 너무커 발을 빼기 위해 서둘러 휴전하려는 미국을 거의 협박하다시피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것도 이승만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토대가 있었기에 외국이 남한을 믿고 투자한 것이다. 그러한 군사적 안정의 바탕위에 2012년 수출5479억불로 세계 7위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인도, 브라질, 캐나다 등의 큰 나라도 모두 수출실적이 대한민국보다 아래다. 이건 기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자원이있나 나라가 크기를 한가!

백범도 훌륭한 독립의 지도자이며 투사이다. 암살당해 그의 인생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김구에 비하여 이승만은 너무 저평가 되어있다.

내 생각에 박정희의 단속도 한목했으리라 하와이 망명지에서 조국에서 죽고 싶다고 병든 몸으로 여러번 탄원했으나 끝내 박정희는 허가하지 않았다. 죽은 몸으로 입국했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혔다.

통일을 원하지 않는 지도자가 어디 있겠는가? 5.10총선거를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하겠다고 북으로 간 김구의 충정을 모르는바 아니며 폄하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미 북한은 김일성에 의한 정부가 수립되어있었고 남한은 박헌영을 비롯한 공산당의 활개로 나라는 혼란했다. 그 때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지 않았다면 남한은 벌써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그런 국제적인 정치감각을 갖고 있었다. 공산당과 대화해봐야 소득이 없다는 것은 오늘날 북한 핵문제를 위한 6자회담만 봐도 알수 있지 않은가?

맨날 질질끌고 알맹이 없는 회담만 하는 가운데 핵실험을 계속되고 북은 이미 핵을 완성하였다. 미국은 질질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시절 차라리 클린턴 생각대로 원자탄 생산시설을 폭격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답답하기만 하다.

공산주의자에게 끌려다니면 안된다. 박근혜대통령처럼 개성공단 회담에서도 국제적 원칙을 준용할 것을 주장하고 굽히지 않으며 끌려다니지 않으니 오히려 효과가 나지 않는가!

맨날 질질끌려다니면 또 언제 개성공단 우리나라 국민을 내쫒을지 모르는 일이며 나중에는 개성공단내 우리나라 국민을 볼모로 잡을 지도 모른다.

이참에 공단 정상화나 가동이 늦어도 국제적 법규를 준수할 것을 확실하게 약속받지 않고는 개성공단을 정상화시킬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다 박근혜대통령! 화이팅!!!

이승만에 대하여 쓸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 관계상 그만 쓰련다. 나중에 또 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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抒情(풀서 뜻정):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시, rain3)

rain 3

                                                                                  맹기호

비가 내린다.

내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아스팔트 낙엽은

물고기처럼 뒤척이며 파닥거린다.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비가 내렸다. 그것이 생명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끝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방랑자처럼 이 비를 맞고 싶다.

그리고 걸어가련다.

회색 안개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길

그대와 재회의 약속도 없는 길을 간다.

 

나(我)는 무엇이고

도(道)는 무엇이며

비는 왜 내리는가

내 사유(思惟)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는 정말 이쯤에서 끝내고 싶다.

 

비가 내린다.

오늘 또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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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파서 안과에 갔더니 대기실에 시집이 한권있어 읽었다.

정성수 시인이 말미에 평론을 썼는데 그 평론 앞부분 글이 좋아서 스마트 폰으로 찍었다가 여기에 타자로 적는다.

 

고대나 현대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지구별에서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시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정을 노래하는 일일 것이다.

즉 시라는 이름을 가진 언어예술은 각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서정적, 주관적으로 읊은 서정시가

 시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가리켜주는 하나의 생태적 모성적 운명적 본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의 모든 예술이 모두 다 그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작가의 감동이나 충격을 전해주는 것을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시는 인간의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이나 시각에 호소하는 미술과 달리 언어 즉 말의 의미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이므로

음악이나 미술처럼 1차적 감성 체계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시는 본능적 감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초적 감동의 체계가 아니라

이성적 활동으로 뜻을 전달하고 감동시키는 의미의 쳬계이다.

따라서 시는 음악이나 미술보다도 오히려 더욱 감각적, 감성적인 데에 보다 강렬한 열정을 투사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특수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구체적 사물의 체계가 아닌 가장 추상적인 언어를 매개체로 삼고 있는 시는 독자에게 원초적 감동을 전해 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인의 정신적 특성상 한국시는 서구시와 달리 사고의 전달, 의미의 전달보다

감성과 감정의 전달에 더 투신해야 하는 보다 근원적인 서정시 중의 서정시 그 고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대한민국의 윤재근 평론가가 이 세상에 영원히 남는 것은 서정시 뿐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시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고 쉽게 짚어 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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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마을!~

학생들이 집에서 안쓴느 물건을 가져와 500원, 1000원에 파는 아나바다 행사를 벌였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이 176만원! 정말 많은 금액이 모였다.

어머니들이 먹거리장터에서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판것이 186만원 합하여 362만원이 모였다.

362만원은 이디오피아에 보내져 학교를 짓고, 우물파고, 식량을 지원하는 사업에 쓰이게 된다.

 

에티오피아는 6.25북한의 남침전쟁 이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좌파정부에 의해 한국에 파병되었던 군인들이 핍박을 받았다 한다.

핍박받던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는데 그 마을이 코리아마을이다.

그 코리아 마을에 지원금을 보내기로 했다.

월드비젼 경기본부 신재권본부장님이 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학부모대표들에게 감사의 인사을 했다.

우리는 모은돈 3627750원을 월드비젼 관계자에게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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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실수 나의 뱃살 나왔다 ㅋㅋㅋ~  머리도 안빗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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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집 마당에 핀 공작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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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립도서관

큰 아들과 함께 도서관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스스로 고르게 하는게 좋겠다 싶어 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다.

경기도립도서관, 수원시립도서관, 수원선경도서관 출입증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이 어려서 제일 자주 다닌 도서관은 경기도립도서관이다.

버스 타고 가서 한번 가면 5권을 빌려주는데 일주일에 2번 갔으니 일주일에 10권을 빌려와서 읽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책을 공책에 기록하라고 시켰다.

읽은 책 중에서

그림이 없는 200쪽 이상의 책을 제목, 지은이, 출판사, 쪽수를 기록하라고 했더니

1년에 450권을 읽어서 매우 놀랐다. 독후감은 쓰지 말라고 했다.

 

경기도립도서관은 경기도의 모든 도서관을 총괄하는 곳인데

일선학교 교장으로 야전에서 독서교육을 열심히 했더니 그게 소문이 났는지

지난 달에 경기도립도서관 운영위원에 위촉해도 좋으냐고 연락이 왔다.

경기도립도서관 운영위원은 경기도 도서장책을  결정하는 자문기구다.

위원장은 경기도의회 교육분과를 맡고 있는 강관희의원이 되고

내가 부위원장에 위촉되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다닌 도서관이어어 더욱 감회가 깊다. ^-^

 

<앉아있는 분이 장애를 가진 강관희의원이다. 내 옆 왼쪽은 수원교육청 최화규 교수학습국장님>나머지도 다 유명한 분들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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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천재 송혜근의 소설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

 

송혜근의 이태리요리를 먹는 여자를 읽었다.

책을 보니 2006년 4월에 내가 사서 읽은 책인데….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줄치면서 읽은 표시가 곳곳에 있는데 처음 읽는 책처럼 생소하다.

 

송혜근! 한마디로 선수다. 언어를 연결시켜 나가는 솜씨가 능란하며 언어가 감칠맛이 있다.

엔딩은 왜 그렇게 슬픈가! 하긴 슬프니 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중편 6개를 모아놓은 책인데 모두 좋다.

좋게 읽은 문장을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어께에서 흐르는 선이 유연하게 다리로 내려가고있고 그 가는 선은 아타까움을 그리고 있었다.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나날이 낙엽빛이 짙어 가는 잎새들 위에 세월이 내려 앉아있었다.

 

자신의 음성이 휘저어놓은 공기에 흠칫했다.

 

모차렐라 치즈(아들 아산이가 전번에 했던 샐러드에 들어갔던 치즈…책에도 나온다)

 

One apple a day keeps a doctor away!(하루에 사과를 한개씩 먹으면 의사를 멀리한다)

 

상처 하나 없이 로매인레터스가 볼륨감 있는 알몸을 접시 위에 눕히고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의 감정 중에서 무엇보다도 기쁨은 숨길 수 없은 것이어서 그녀 몸에서 뻗어 나오는 파장이 주위를 가늘게 떨게 하는 듯 했다.

 

믿음이란 값진 도자기 같아서 한번 금이 가면 가치를 잃고 만다.

 

옷들도 그들을 위해 완벽한 한 순간이 있는 거란다. 옷들은 그런 날을 위해 평소에 긴장을 풀고 있는 거란다.

 

당신은 백장미 즙에 목욕하고 나온 선녀같아

 

어머니는 애지중지 떠받들어져서 자란 규수의 오만함과 기품을 모두 갖고 있었는데…..

 

이마 위가 벗겨지고 눈꺼풀이 주저앉은 그의 모습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종혁은 마지막 몸을 사르는 석양처럼 그에게 마지막 선물처럼 주어진 그 감정이 소중하고 고마웠다.

 

눈앞에는 따스한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 강이 펼쳐저 있었고 길은 그 강을 따라 좌우로 길게 뻗어 있었다.

주책스럽게도 엔틱이 되어야할 그의 가슴이 두방망이질치고 있었다.

 

결혼 며칠을 앞두고 그녀는 매일 반복되는 평화스러운 일상이 그녀를 죽게 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 잡혔다

그녀는 그대로 살다 죽을 수 없다고 울면서 며칠이면 남편이 될 사람에게 사정했다 제발 놓아달라고….그녀는 완전한 고독이 그리웠다.

 

무심이는 남자에게서 그녀가 들어가 똬리를 틀 수 있는 은신처를 보았다. 그 은신처로 파고 들어가 삶의 걱정들을 피하고 싶었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세가지를 들라고 한다면 여자, 자동차, 아버지를 들것이다.

 

가끔씩 젖은 포장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진한 외로움의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일은 죽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그가 문을 열 때마다 방들은 비밀모의를 하다 들킨것처럼 화들짝 놀라는것 같았다.

 

유럽의 여러나라를 다닐 때 창작의 고통에는 이르러 보지 못한채 겉 분위기에만 취해 있는 사람들을 지겹게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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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6.25남침전쟁 때 우리나라에게 전투병을 보내준 나라는 16개국 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대부분 잘 살고 있습니다만 유독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는 굶주림으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당시 이디오피아는 3518명의 전투병을 보냈고 253회의 전투에 참전했으며 16명이 300명의 중공군과 싸운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121명의 젊은이가 코리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2013년 이디오피아의 1인당GNP는 $357로 세계최빈국입니다.
코리아는 지난해 1인당GNP$25167로 이디오피아의 70배나 됩니다.
2013년 수출실적도 남한이 $5479억으로 세계7위를 달성했습니다.
 이제 갚을 때가 되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것은 금수나 하는 일입니다.
하여 상촌중학교 학생회와 학부모회 공동주최로 이디오피아 돕기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모두 이디오피아 어린이를 돕는데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많이 참여해주기 바랍니다.
보낸 돈은 학교 짓고, 우물 파고, 식량 지원하는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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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2월, 3월, 4월 중순까지 마라톤을 준비했다.

그리고 4월 19일   경기마라톤에 출전하고 그 후 운동을 하지 않았다.

말이 마라톤이지 겨우 10km를 뛰었으니 정통마라톤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난 10년 동안 마라톤한다고 떠벌리기만 했지 제대로 뛴적이 없다.

하프코스(21.095km)를 포함하여 10번 이상 뛰었으나 풀코스(42.195km) 한번도 뛰어본 적이 없으니

제대로 된 마라토너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사실 따지고 보면 늘 말의 성찬이었지 제대로 궁행이 없었다.

 

그나마 2013년 4월19일 10km마라톤의 기록이 59분41초였으니 만족할 만한 기록이었다.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기록이 나와서 골인지점을 통과하고 나도 놀랐다.

 

그런데 4월19일 경기마라톤 출전 이후 단, 하루도 운동하지 않았다.

몸은 망가지고 근육도 풀렸다. 하여 6월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가는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3번 정도 헬스장에 가서 가볍게 달리고 역기 등의 근육운동을 한다.

근육운동하면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3일전부터 어깨가 아프다. 빈손을 위로 드는것도 아파서 안된다.

단단히 고장난 모양이다. 며칠 쉬면 날까 했는데 3일 근육운동을 안하고 쉬는데도 차도가 없고 더 아프다.

 

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쩌면 좋은가?……..

 

<휘트니스클럽에서 삼성갤럭시3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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