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이해가 간다.
학생들이 교복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망포중학교 교복을 교사,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종합하고,
전문 디자이너의 자문을 받아서 완성하였다.
교장실에 완성품을 마네킹에 입혀놓고 보니 너무나 예뻤다.
여학생들이 교장실을 기웃거리고, 어떤 여학생들은 어려움도 없이
교장실에 들어와 저희들의 교복을 보고 나간다.
교장선생님을 어려워하지 않는 것이 조금 무례해 보이기도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라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여학생들의 그러한 행동이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고
오히려 스스럼없이 교장실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귀여운 생각이 든다.
남학생들은 자기들의 교복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여학생 교복이 예뻤는데 딸을 두지 못한 나로서는 여학생 교복을 입혀볼 내 자식이 없으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예쁜 여자아이들의 옷이 진열되어있는 가게를 자나 칠 때 마다 나에게 딸이 있으면 사줄텐데……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젊은 시절 아이를 낳을 때는 아들을 바랬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의 일생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기르는 과정에서도 남자아이보다 조심스럽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는 일에서도 불리하며, 결혼 후에도 가족 안에서의 역할이 남성보다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사에 관한 일은 대부분 여자의 일로 인식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귀엽고 기르는 재미가 있는 것을 알지만 아들을 바랬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들만 둘을 두었다. 이제는 훗날 며느리를 귀여워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딸을 두지 못해서 그런지 질녀인 맹하영을 나는 특별히 예뻐한다.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는데 볼수록 예쁘다. 학기 초만 되면 조카딸의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부탁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으며, 부산에 사는 당질녀도 귀여워한다. 당질녀는 이번에 중학교 영어선생님을 신규발령을 받았는데 축하의 장미꽃 바구니를 보냈다. 혜영이가 좋아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