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내가 떡볶이를 먹으면 아들과 가까워 질 수 있을까?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갔다(홈플러스) 대형마트에 가서 이리 저리 물건을 고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저것 살펴보고, 바구니에 담고, 아내와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도 한다. “어머니! 광어회가 싱싱한데 살까요? 아니면 홍탁(홍어 삭힌 것)이 나왔는데 살까요?” “생선회는 그만 두고 홍탁이나 사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초고추장이 떨어졌답니다. 초고추장 생산하는 업체에 불이 낫답니다. 세상에 뭐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집에 초장은 있지요?” 뭐 대충 이런 식이다.

매장 한가운데에 튀김, 국수 등을 파는 음식코너가 있었다.

그곳에서 머리 허연 아버지와 아들이 떡볶이를 맛나게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한참동안 지

켜보았다. 나는 떡볶이를 먹지 않는다. 도대체 족보가 불분명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깨끗하고 기품 있는 떡이면 이름조차 흰떡이겠는가! 흰떡은 가래떡이라고도 불리우며 분명

히 용도가 정해져 있고, 먹는 때도 정해져 있다. 해가 바뀌어 조상에 차례를 지내면서 떡국

으로 먹는 음식이다. 조상에 대한 감사는 물론이요, 어떤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먹는 음

식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볼성사납게 뻘건 고추장을 걸쭉히 발라 어묵과 함께 뒤섞

어 저으며 익혔다가 접시에 내어 놓는다. 고추장을 뒤집어썼으니 본연의 제 색깔도 잊어버

린 셈이다. 고추장 국물에 빠져 허우대는 흰떡을 보노라면 처연한 생각이 든다. 그토록 고

고한 자태의 흰떡이 고추장 국물에 익사하여 그야말로 떡이 된 형국은 목불인견이다. 용도

도 잃고 색도 잃고 완전히 족보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80년대에 들어와 학교 앞

분식점 등에서 학생들에게 값싸게 제공되던 것이 오늘날 버젓이 음식의 한 장르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나는 마땅치가 않다. 더군다나 나는 위장이 약해서 빵이나 떡을 싫어하는 사람이

니 떡볶이를 먹을 리가 없다. 그런데 머리가 허연 청바지를 입은 신사가 20대의 아들과 함

께 떡볶이를 먹는데, 아들이 먹는 것을 옆에서 조금 맛 보는 것이 아니라 저녁 식사 대신

먹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적극적으로 먹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아들이 핫

바를 사려고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기에 내가 물었다. “아버지와 함께 떡볶이를 먹는 모

습이 보기 좋아 아까부터 보고 있었는데, 혹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지요?” 젊은이는

처음에는 조금 놀라다가 “58세이십니다.” 세상에 나보다 7살이나 더 먹은 분이 저렇게 맛

있게 떡볶이를 드시다니 아내에게 말했더니 “당신 아들들이 얼마나 맛있게 먹는 음식인데

떡볶이를 그렇게 천대합니까?” 라고 말하였다. 주인에게 떡볶이 1인분을 싸달라고 말하였

다. 집에 있는 둘째아들에게 주려고 샀다. 음……나도 떡볶이를 먹으면 아들과 가까워 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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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마이클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에 갔다(홈플러스)

아들이 겨울방학에 가있던 친구(캐나다 마이클)집에 보낼 선물을 사려고 갔다. 겨울방학은 20일 정도여서 귀국하기에는 너무 짧다. 재작년 겨울방학에 귀국했을 때 보니 오는 날부터 헤어질 걱정을 했다. 그래서 겨울에는 귀국하지 않는다. 기숙사를 비워야하니 갈 곳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민 가정인 친구(마이클)를 사귀어 신세를 지고 있다.

보낼 물건을 적어본다.

고추장

된장

참기름



미역

깻잎(통조림)

고춧가루

그리고 해태 ‘맛동산’을 한 봉지 샀다.

나로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샀다. 된장과 깻잎은 두벌을 샀는데 그

것은 우리가 집에서 먹어보고 검증이 되면 보낼 것이다. 10킬로그램 정도의 무게가 나갔다.

아들이 20일 가까이 묵었다 하니 답례 치고는 너무 적다. 그러나 마이클의 할아버지 할머니

도 손자를 키우는 분이니 이해하리라 믿는다. 아들의 친구 마이클은 지난여름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 집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젊은이가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온 것이다. 함께 문화답사(백제 문화권)를 다니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점에 데리고 다니

기도 했다. 마이클은 핸섬한 외모에다 아주 단정한 매너를 지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

움을 느끼게 하였다. 대학 2학년인데 한마디로 신사였다.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문화적으로

는 완전한 앵글로아메리카인데 어쩌면 그렇게 예의가 바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더 잘해주었어야 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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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11

전에 같은 학교에 함께 근무한 박건웅 선생님은 시인이다.

지금은 명퇴하셨고 교회에서 일요일 주일 예배 시간에 가끔 만난다.

선생님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시절 정년이 갑자기 단축되어 명퇴하셨는데

명퇴식에서 내가 무명교사예찬을 읽어드렸다.

시를 아주 쉽게 쓰는 분인데 새로 7번째 시집을 냈다면서 한권 주셨다

그 시집을 읽다가 [숨어버린 마을]이라는 시가 너무 좋아 수십번 읽었다

산방의 벽에 써서 붙이고 싶다. 우선 여기에 원문을 옮겨본다.

-숨어 버린 마을-

수수 울타리 사이로 오손 도손

이웃 정 나누며 살던

작은 마을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비대한 몸집에 밀려

마을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멀리 계양산을 타고 내려온

빨간 저녁노을이

마을에 앉으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남정네는

황소의 방울소리와 함께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을 향해

마을을 향해

들길을 걸어왔고

검불에 불지피며

저녁밥 짓는 아낙은

방울소리 기다리며 몇 번이나

울 너머로 그 하얀 목을

학처럼 빼곤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노을이

자리를 밤에게 양보하고

마을을 떠날 즈음

남정네가 마당으로 들어서면

무엇이 그리 수줍은지 아낙의 볼은

방금 떠나간 노을마냥 빨개졌고

아이는 싯누런 콧물을 소매로 훔치며

아빠를 반겼고

삽살개도 덩달아 꼬리를 치며

마당을 뛰어다녔다

밤하늘의 총총한 별빛이 실비처럼

쏟아져 내리면

멍석 가까이 매캐한 쑥불연기 오르고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운 손자녀석

나무꾼 선녀 이야기해 달라고 칭얼거릴 때

수수울타리 위로 하나 둘

반딧불이 날았다

어른들 아이들 가족 모두가

옥수수 감자를 야식으로 먹으면서

얘기꽃 웃음꽃 피우느라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던 단란한 마을이었는데

이제는 옛 마을 흔적조차 찾을 길 없고

차량의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매연이 안개처럼 거리에 흐르고

타이 맨 남자와 양장한 여자들

그리고 예체능학원명이 새겨진

가방 든 아이들이 활개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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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10

산방의 사진을 올려본다

아직 수리하려면 몇군데 손을 더 보아야 하지만

더 미룰수 없어서 올린다. 87세되신 할머니가 안채에 혼자 사시고

나는 논어에 나오는 글로 대련을 써붙인 바깥채에 산다.

보기에는 헌집이지만 내부를 수리했기 때문에

장작을 때면 방이 설설 끓는다.

나에게 딱 맞는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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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9

교육계에서 내가 제일 은혜를 많이 입은 정무학교장 선생님께서 시집을 내시는데 영광스럽게도 내가 서문을 써드렸다. 둔탁한 문장이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동안 아주 즐거웠다. 가능한 짧게 쓰려고 애썼다.

[서문]

시, 음악, 춤은 원래 삼위일체의 혼합예술이었는데 문화가 점점 진보되면

서 이 세 가지가 분리되었고 리듬은 아직도 중요한 공통요소로 남아있다.

孔子도 『論語』泰伯篇에서 “興於詩立於禮成於樂”(시에서 보편적 정서를

일으키고, 예에서 의범을 세우고, 악에서 조화를 이룬다)이라고 하였고, 헷

세(Hermann.Hesse)는 소설 “『어느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에서 시를 배

우려면 우선 음악에 통달해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정무학 시인의 詩 世界에 있어서 그 기초는 철저한 음악성이다.

고향집 마당에 달빛 걸리면/

어깨춤 덩실 덩실/덩실 할머니

서울로 유학 간 손자 사리문 열고 들어서면/

덩실 덩실 춤을 추던/덩실 할머니

–<덩실 할머니> 부분

여기서 보여주는 음악성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노래한 민요조의 운율(韻

律)과 함께 역동적인 율동(律動)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독자가 이 시를 읽

는다고 해도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고 흥겹게 된다. 정무학 시인은 여기

서 분리되었던 시와 음악과 춤을 교묘히 다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음악성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시를 써왔으면서도 현역에서 은퇴하는 시점에서 시집을 내

게 된 것은 아마도 공직에 더욱 충실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두고

온 것을 그리워하며 자연을 사랑했고, 가족을 사랑했던 정무학 시인은 이

제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남양에 마련한 농장으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 또

다른 풍요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05년 1월 비봉 쌍학리 산방(山房)에서

맹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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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8

산방의 난방은 온돌이다. 그러니 땔감을 구해야한다. 김정일 형이 동네 산에서 감벌하여 통나무를 한차 가져왔다. 나무를 처마 밑에 쌍아 놓고 보니 나이테를 드러낸 가지런한 둥근 단면이 뽀얀 처녀 속살같이 수줍음을 드러내고 있다. 문을 열고 보면 뒤뜰을 돌아오는 바람이 진한 송진 내음을 그리움으로 방에 전한다. 아! 정말 얼마만인가!

요즈음 세상에 흔한 것이 나무이다. 출근 길에 버린 나무토막이 눈에 보이면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 싣는다. 어떤 때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지런히 묶은 나뭇단을 얻은 적도 있다. 별로 땔감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매일 불을 때는 것이 아니고 열흘에 한번 정도 산방에 기거하다보니 불을 웬만큼 지펴서는 방이 더워지지 않는다. 자동차 트렁크 두개 정도에 들어갈 나무를 때야 방이 덥다. (사실 더운 정도가 아니고 설설 끓는 다고 해야 옳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장작을 구해 쌓아놓고 처마 끝까지 쌓일 장작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山房에 가보니 나무가 많이 줄었다. 아궁이를 보니 불을 땐 흔적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물으니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와서 불을 때면 쉽게 더워지지 않음을 걱정하여 매일 조금씩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니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시다니!

나를 위해 한 일이니 더 이상 나무라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사람 없는 방에 불을 때는 일이 없도록 당부하였다. 사실 할머니는 지난 번 朋友들이 왔던 날 새벽에도 몰래 일어나 내 방에 불을 지피셨다. 혹, 새벽에 추울까하여 새벽 군불을 땐 것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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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7

방은 아주 따뜻하였다.

할머니에게 “오늘 친구들과 함께 가니 미리 군불을 때놓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방을 따뜻하게 데워놓으셨다. 정말이지 이게 얼마만인가! 온돌방에 등을 지졌다. 세 친구는 덥다고 난리다. 늦게까지 밀린 이야기를 했고, 포도주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준비한 송판에 대련을 썼다.

모두 세장의 대련을 써서 기둥에 걸었는데

논어에 나오는 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두개를 직접 썼고,

朋友 남기완 교수도 논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글귀를 직접 붓으로 썼다.

내가 쓴 글은

學而時習之不亦說乎,

興於詩立於禮成於樂

남교수가 쓴글은

逝者如斯夫不舍晝夜

대련을 걸고 밖에서 보니 겨우 비를 가릴 수 있는 초막에

가난한 선비가 거하는 집으로 보기에 적당하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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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6

오늘 드디어 산방에 입주한다.

손님을 초청하였다.

평생을 함께가는 동지들이다.

천안에서 대규모로 농사짓는 전학수

화성에서 사업하는 송기원 사장

중문학을 하는 남기완 교수

이렇게 3명을 초청하였다. 대접이 융숭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좋은 시간이 될것이다. 오늘 저녁 기대된다.

산방에 입주하면서 준비물 목록을 작성하였다. 부모님과 함께 평생을 사는 나로서는 따로 살림을 난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것을 장만한적이 없다. 결혼할 때도 별도로 장만한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산방에 입주하면서 이런 물건을 사니 마음이 새롭다.

<준비물 목록>을 적어본다.

커피, 녹차, 오미자차

통성냥

부루스타

부탄가스 10개

냄비 1개

주전자

컵 4개

바께스 1개

두루마리 휴지 3개, 뽑아쓰는 휴지 1개

쓰레기통

수저 4벌

육개장라면 10개

설거지용 프라스틱 용기

세수대야

퐁퐁

수세미

이불 2채 (겨울용 요, 이불, 여름용 요, 이불)

벼개 2개, 방석 4개

비디오테입 2개

걸래용 수건2장, 걸래그릇 1개

수건 3장

옷걸이15개

나사못 15개

스텐그릇(국그릇) 4개

면장갑 2벌

포도주 1병,맥주 15병

생수 2병

에프킬라

김치 1통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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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5

산방의 난방은 온돌이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다. 내가 산방에 매일 올수는 없다. 아마도 주말에나 찾을 것이다. 그런데 온수보일러를 설치하면 불을 때지 않는 날은 배관이 얼어붙을 것이다. 그러나 온돌은 그런 걱정이 없다.

온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의 독특한 난방 형태이다. 방에 편편한 넙적 돌로 구들을 놓고, 그 안에 불을 때면 달구어진 돌판의 열로 황진이가 서리 서리 펴겠다던 그 긴 겨울밤에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뜨끈했던 온돌방의 아랫목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금년 겨울밤을 산방의 온돌에서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온돌방은 매일 불을 때야 방이 뜨겁다. 주말마다 와서 가끔 불을 넣으면 지표에서 온돌의 고래로 스미는 습기를 먼저 말려야 온기가 전해진다. 따라서 쉽게 방이 더워지지 않는다. 최소 5시간은 때야 미지근한 소식이 온다. 다만 한번 달궈지면 쉽게 식지 않는 장점도 있다.

아궁이도 엉망이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니 방의 옆구리에서 연기가 펄펄 나온다. 오랫동안 불을 때지 않아서 서생원이 방고래를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사방에 쥐구멍이고 구멍마다 연기가 나온다. 시멘트로 모든 구멍을 막았다. 그제야 굴뚝으로 연기가 나온다. 아무래도 굴뚝의 높이가 낮은 것 같다. 용마루 높이까지 올려야겠다.

할머니는 집수리에 땀을 뻘뻘 흘리는 나를 보고 안스러웠는지

“걱정거리가 없으니 걱정을 사서하는 사람이구려” 라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어찌 이 철없고 낭만적인 선비의 마음을 알겠는가! 이것은 내가 공연히 만든 걱정거리가 아니고, 새로운 나의 인생이다! 나도 이런 생활이 불편하고 힘든 것을 왜 모르겠는가?

내가 멋있는 별장도 아니고, 팬션도 아닌 이런 산방에 자리를 잡고, 30년 전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것은

“그리움” 바로 그 곳으로!

내가 두고 온 곳!

그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나는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하든지 변화는 발전이다.

이대로 살 수 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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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산방일기 4

네 번을 그렇게 했던가!

드나들면서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귤을 가지고 가거나,

사과를 가지고 가거나,

단감을 몇 개 가지고 가거나,

돼지고기 반근을 사가지고 가거나……(냉장고가 없으니 많이 살 수도 없다)

할머니 나이는 85세,

22년전 영감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서 살고 있다고 하였다.

60살에 후처로 팔자를 고쳐 들어왔는데 물론 자식을 낳지 못했고, 큰 아들, 작은 아들하면서 말하는 것은 아마도 전 처 소생의 자식들인 듯 하다. 60에 시집을 왔으니 전처 소생의 자식들이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후일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낳은 자식은 물론, 공을 들여 키운 자식도 없을 것이다. 현재 자식들은 모두 떠나고 혼자 살고 있는데 그 자식들이 드나들지도 않고, 보살피지도 않는 것 같다.

전기요금을 내지 않아 몇 달 동안 전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들어왔다고 했으며, 어쩐 일인지 현재 전기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있지만 오래 전에 고장 난 것이고, 기름도 없고, 전기요금이 무서워 전기장판도 켜지 않는다. 아니 전기장판도 고장난지 오래다.

세상에! 85세된 노인이 난방도 없이 추운 방에서 겨울을 나는데 죽지도 않고 정정하기만 하다. 몇 해 겨울을 냉방에서 살았는지 너무나 기가 막혀 물어보지도 못했다. 사람의 목숨은 참으로 질기고 모질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이 이토록 처절할 수가 있는가!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추위에 떨면서 진저리를 쳤을까! 그러고도 저렇게 살아남았으니……

할머니는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드나드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고 하면서 어디에 그런 눈물이 남았는지 소매로 눈을 훔치며 말했다. 사람이 한번 드나드는 것이 자기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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