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자연은 같다. 함께 같이 한다.

 

이번에 내가 방문한 중국은 위도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물론 중국은 영토가 넓어 다양한 기후가 있으나

특히 내가 방문한 상하이, 베이징, 태산, 곡부 등은 중국의 중북부 지방으로 경기도와 비슷한 위도여서 식생이 내가 사는 지역과 비슷하였다.

하긴 지질학적으로 아주 오랜 옛날에는 중국  우리나라 일본이 모두 붙어있었다고하니 식생이 비슷한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는 풀과 나무를 만나면  아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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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나무 꽃을 태산에서 보았다.

싸리빗자루 만드는 나무다. 어려서 많이 베어다 빗자루를 만들곤 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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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오르던 중 명아주를 보았다.

저걸 어려서부터 거름을 많이 주고 집중적으로 키우면 크게 자라는데

그것으로 만든 지팡이가 명아주지팡이라고 최고품으로 친다. 풀로 만든 지팡이니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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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의 가파른 계단 옆에서 여뀌를 보았는데 찧어서 즙을내어 물에 풀으면 붕어가 배를 드러내고 떠오른다 어려서 물고기 잡는데 사용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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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태산에서 본 달개비, 근접촬영을 했는데  사진 잘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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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대학 구내에서 자귀나무가 꽃을 피운것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자귀나무는 6월에 모두 꽃을 피웠는데 여기는 철이 늦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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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 시내에서 동백을 가로수 화단에 심은 것을 보았다.

 동백은 추운 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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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오르면서 본 환삼덩굴이다.

어린 시절 소를 끌고 나가면 까칠까칠한 환삼덩굴을 잘 먹는 것을 보았다.

길을 지나가다 팔에 스치면 환삼덩굴의 까칠한 줄기에 피부가 붉게 까진다.

그런 풀을 소는 혀로 휙감아서 잘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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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나무, 부끄럼을 잘타는 나무….배롱나무를 동제대학에서 보았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배롱나무가 제철이다.

꽃을 피우는 기간이 길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데 배롱나무라고 부르는것이 맞다.  

피우는 기간이 길어서 중국과 우리나라간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영덕중학교에 배롱나무가 10그루 정도 피었는데 너무나 아름답다.

나도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배롱나무를 꼭 심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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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입구에서 과일을 파는 가게를 찍었다.

사과, 복숭아, 토마토, 오이, 옥수수 등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지금은 복숭아가 제철이다. 곡부에서 복숭아를 사먹었는데 제철이라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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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대학 정원에서 본 박태기나무이다.

봄철에 박태기나무 꽃은 정말 화려하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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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대학 구내에서 권선고등학교 류포열교장선생님과 한컷!

류포열교장선생님은 영문학을 전공했으면서도 시인이다. 그의 시는 아름다운 서정을 바탕으로하면서도

시어가 아주 깊도 두텁다. 마치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것같은 느낌이 온다.

뒤에 메타스퀘이아 와 능수버들이 보인다. 우리나라 가로수에 많이 심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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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영덕중학교 앞 야산에 올랐다가 이상한 야생화를 발견하였다. 산수국인가하고 들여다보았더니 달랐다.

모르는 야생화였다. 비교적 크기도 컷다.  이와 같은 것을 동제대학 구내에서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이름을 모르니 더이상 언급할 내용도 없지만 똑같은 것을 중국에서 발견하였다. 찾아보아야겠다.

분명히 화단에서 귀하게 기르는 꽃은 아니다. 그런데 꽃이 크고 예쁘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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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仁  

 

이번 중국 방문에서 중국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방문하여 중국 교육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것이 중요한 목적이었지만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은 공자학원 총국을 방문하여 공자교육의 현주소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논어를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고, 원전을 읽을 만한 한문 실력을 갖춘것도 아니지만 공자는 내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있고 늘 외우는 논어의 몇개 문장은 내가 공자를 존경하고 흠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나는 공자를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2500년 전에 종이도 없이 죽간에 글을 쓰던 시절에 백성을 위해 갖추어야할 군왕의 덕목을 논하고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말하며

학문을 하는 기쁨에 대하여 논하고 시와 음악을 말한 자체만으로도 공자는 나에게 큰 감동이다.

 

젊은 날 아들을 낳았을 때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였다. 간난 아이에게 어떤 이름을 좋아하느냐고 물을 수도 없지않은가?

孟은 성이니 어쩔수 없이 주어야하고 마지막 글자는 永으로 돌림이었다. 가운데 한글자만 정하면 되는데 내가 작명가도 아니어서 뾰쪽한 방도도 없고

나중에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책임감도 들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공자를 생각하였다. 공자의 생각을 한마디로 하면 仁이다.

그래서 孟仁永으로 지었다.  분명한 것은 그냥 공자를 생각해서 仁을 쓴것이 아니라 내가 공자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仁을 끌어다 이름에 쓴것이다.

지금 같으면 한글이름을 지을 생각도 해보았으나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번 중국방문에서 공자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하여 공자를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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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경희대학교의 후원으로 중국의 공자학원 총국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초중고 교장 15명이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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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올랐다. 정상 바로 밑에 공자가 올랐던 바위가 있었다. 경희대학교 어문대학장 윤우섭교수님과 기념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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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오르던 중 공자사당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공자님은 만세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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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안에 모셔진 공자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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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묘 가는 길에 공자님이 마시던 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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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공자님의 묘에 이르렀다. 무덤에는 풀이 무성했고 큰 나무도 봉분 가까이 자라고 있어서 놀랐다. 한국과는 묘지관리 문화가 다른듯 하였다. 

나는 중화에 거부감을 가진것을 숨기지 못한다. 동북공정으로 발해는 물론 고구려의 역사도 왜곡하는 중국이 과연 세계 중심국가인지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자묘에 두번 절하였다. 진심으로 그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공자를 사랑하기에 절을 했다.

논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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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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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였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려했더니 대출 중이어서 책방에 가서 샀다.

청춘을 힘겨워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이제 막 청춘의 길에 들어선 두아들에게 주기 위해 썼다는 이 책은

불안해 하며 정작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책이다. 나도 생각해보면 불안한 청춘의 시기가 있었다.

무엇을 해서 먹고 살고 어떻게 인생을 살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살았던 그래서 더욱 미래가 불확실하던 시절이 있엇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이 화려한 시기였다.

 

좋은 부분이 많은데 몇개만 올려본다.

 

인생의 차꼬(죄수를 가두어 둘 때 쓰던 형구(刑具). 두 개의 기다란 나무토막을 맞대어 그 사이에 구멍을 파서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를 채우게 되어 있다)

가 옥죄일수록 그보다 더 단단한 삶의 지지대가 있어야한다. 몰두가 그 지지대다. 몰두가 나를 만든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가 몰두하는 그것이다.

진정한 몰두를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 무엇을 성취하고자 할 때 충분한 재능을 가졌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그 무엇에든 우리 삶을 바꾸고 동시에 우리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을 만큼 용기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바보들은 결의와 각오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정착 실천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나태와 타성으로 포기하기 일수다.

늘 그럿듯이 중요한 것은 실천이요 용기다.그것이 혁명이다.

 

 일주일이나 한달짜리의 작은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라.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려면 더이상 힘들다고 칭얼대지마 청춘아!

 

연애감정은 청춘이 가질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도 원초적이고 순수한 감정이다.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알고 학문을 알고 인생을 알려하는가?

젊은 그대가 해야하는 수만은 경험 중에서 으뜸은 역시 사랑이다.

 

체험만큼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것은 없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춘시절에 쌓는 체험이란 무척 소중한 것이다.

자기를 돌아보는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한 다양한 체험을 해보려고 노력하라.

그것이 비난받을 행동이거나 지나치게 그대의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는 속담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나 여건 때문에 모든것을 직접 체험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읽는다. 책에서, 신문에서, 잡지에서, 우리는 성공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인터뷰나 체험담처럼 실제 상황이든, 소설이든, 가상의 설정이든, 세상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간접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읽을 것,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읽을것  그리고자신에 대하 생각할 것. 

 

한달에 한가지라도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찾아 시도해보라. 펀드가 아니라 꿈을 이룰 그대의 역량에 투자하라.

 

신은 사랑하는 인간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고 했다. 어느 날 부터 나는 시련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를 강하게 만든것은 시련의 힘이기 때문이다. 청춘이여! 청춘은 그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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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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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1945년 생이면 해방둥이구나, 올해 만66세다. 그가 암에 걸렸다. 침샘암에 걸렸다. 암에 걸린 그가 두달만에 썼다는 소설 낯선 타인들의 도시를 읽었다.

카프카의 변신, 이청준의 소문의 벽과 같은 부류의 책이다. 이소설은 K라는 남자의 사흘에 걸친 이별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별은 자발적이지 않고 또 어떤 감상적인 태도도 허용하지 않는다. 단숨에 칼을 내리치듯이 하루 아침에 K로 하여금 자신이 익히 아는 현실에서 떠날 것을 명령한다.

물론 K는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자신이 아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현실이란 스킨과 같은 사물들, 말투와 행동,

아내의 습관들,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그런것들이 없다면 그의 현실도 없다. 그렇다면 현실이란 곧 일상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원고지에 만년필로 수작업을 하는 사람이어서 매일 20-30매의 원고를 썼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소설을 쓰는 동안 손톱한개와 발톱두개가 빠졋다. 항암치료 중의 집필 의욕을 최인호는 고통속의 축제라고 말하였다.

그만큼 그는 창작욕에 허기져 있었다. 그의 책을 좋아했기에 기대가 컷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런 부류의 소설에는 난 별 흥미가 없다. 사실 인내하면서 읽었다.

210쪽에는 이런 좋은 표현이 나온다. ” 가을 햇살이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골목길 위에 박살나 있었다.”

작가 최인호가 오래 살면서 우리에게 더욱 좋은 책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감사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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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다

6일간 중국을 다녀왔다. 중국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방문하여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고왔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는 여러 곳을 구경하였다. 주변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해도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중국이 올라와봤자 별거있나. 아직은 저가  기술로 허접한 물건이나 만드는 나라 정도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이번 중국 방문으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확실하게 알았다.

상해의 동방명주는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 같은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다. 올라서 아래를 보고

뉴욕의 엄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내려다 보는 마천루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그렇게 같을 수가 있나!

내려올 때 한층 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미국과 똑 같다. 뉴욕에서 보는 마천루와  같았다.

중국학교 교장이 보여주는 프리젠테이션에서는   중국 학생들이 군사훈련까지 받고 있었다.

내가 질문하였다. 중국은 땅도 넓고, 인구도 많고 2010년 수출 세계1위로 이제 경제력까지 갖추었는데 무엇이 두려워 어린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는가?

답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 체육활동의 일환으로 군사훈련을 시킨다”고 교장이 말했다. 세상에! 체육활동으로 군사훈련을 시키는 나라도 있나? 그걸 믿으라고?

학생들이 대포 앞에서 두주먹을 불끈 쥐고 함성을 지르는 사진을 ppt로 보여주면서 체육활동이니 겁먹지 말라고!  중국은 정말 생각할 수록 도움이 안된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은 중국이 남북조 시대로 분열되어 고구려가 진출할 수 있었다. 남북조를 통일한 수가 당장 쳐들어 오지 않았는가? 당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저 큰나라 저 많은 민족이 분열되지 않고 통일되어 우리가 고초를 격게되는가! 모택동 동상을 여러개 보면서 미웠다. 6.25남침전쟁에 중국만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통일될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한 일이다. 과거 2000년의 한반도 역사에서 중국은 늘 우리에게 무서운 나라였고 섬겨야하는 나라였다.

지금도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네 나라 역사라고 우기고 있다. 그것이 동북공정의 음모다.

10여년 전에 이임하는 주한 미국 총영사가 북한이 어느날 무너질 때 제일먼저 북한 땅에 중국군이 진주할 것이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했던것이 기억난다.

중국이 두렵다. 그렇게 큰 나라가 왜 영토야심은 보이는가? 

동방명주 건물 안쪽에 여러나라 어린이를 초청하면서 세계평화 운운하는 글자를 벽에 붙여놓은 것을 보았다. 부디 거짓 구호가 아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중국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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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ding anniversary

8월15일은 나의 결혼 기념일이다.

원래는 1박2일 여행을 가려했는데 내가 어제 아침에 갑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제 하루를 쉬었다. 오후에 나의 애견 리트리버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팔달산에 올랐다.

리트리버 코코는 무척 좋아하였다. 팔달산의 잔디밭을 이리뛰고 저리뛰고 신나게 달렸다.

 

오늘 아침 일어나 어디를 갈까하다가 당일치기로는 여주의 목아박물관이 어떤가? 하고 물었더니 마침 좋다고 한다.

하여 둘이서 오붓하게 목아발물관에 다녀왔다. 글쎄…결혼기념일 여행으로 좀 미흡하다 싶지만 어쩌랴 만족해주길 바라며 돌아와 몇자 적는다.

나에게 시집와서 내 자식을 낳아주고, 시부모 모시고 함께 살아주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살아주고 ㅎㅎㅎ~ 감사하고 감사한 사람이다.

귀로에 남한강에서 잡은 깨끗한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을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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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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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선생은 내가 시골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가르친 학생이다.

내가 말로만 스승이지 사실 인품으로 치면 김영선 선생이 내 스승입니다 라고 말했다. 김선생은 천재여서 공부도 잘 했지만 학생 때부터 남다른 인품을 가지고 있었다.

타고난 결단력과 용기도 있는 사람이다. 직업을 한번 바꾼 경험이있는데 용기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선생은 신앙심도 깊다. 지금은 수원시내 중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엊그제 방학을 맞아 온 가족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를 찾아왔다.  

교장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큰딸 김예성, 김영선선생, 둘째딸 김주영, 부인 김명환씨의 모습이다. 부인의 인물도 출중하거니와 딸들도 인물이 너무 좋고 귀엽다. 

미국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조사하였더니 딸 2명을 데리고 사는 사람이라는 조사결과가 있었는데 김선생이야말로 딸이 둘이다. 하긴 오바마 대통령도 딸이 둘이구나.

나는 40이 되어 철이나는 것을 느꼈다. 40전에는 대학에 많이 합격시키는 것이 교사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수업만 열심히하였다.

그래서 40 전에 가르친 학생을 만나면 겁이 난다. 그러나 40이후에 가르친 학생을 만나면 지금도 자신있다. 정말로 학생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김선생은 40전에 가르쳤다. 그래서 스승으로서 자신이 없다고 말했더니 아니라는 것이다. 훌륭한 교사였다고 말하면서 바른 사람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애쓰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없다.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거나 아니면 내가 수업은 열심히 했으니 그것을 훌륭한 교사로 착각하는 것이리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까지 사고 갔다. 김선생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은 복을 타고난 학생들이다.

부인도 눈빛이 선하고 겸손하며 내공이 깊은 사람으로 보였다. 요즈음 제자가 스승을 찾아오는 일은 아주 드물다. 

다들 바쁘게 사느라 시간 내기가 어려울 텐데 식구가 모두 찾아오다니 한량 없이 기쁘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김영선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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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여행

장모님을 모시고 여름 여행을 짧게 다녀왔다. 충남 보령지방에 있는 성주사지, 무량사를 구경하고 성주산 휴양림에 있는 팬션에서 묵었다.

팬션은 깨끗하였고 계곡 물은 맑고 시원했다. 장마철이라 도중에 큰 비를 만나 운전을 쉬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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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에서 찍었다. 대부분의 사찰은 금당 앞에 탑이 2개가 있는데 여기는 3층 석탑이 3개였다.

백제 시대의 탑이면서도 화강암의 자른면 각이 날렵하게 살아있어서 놀랐다. 마치 어제 자른것 처럼 각이 예리하였다.

한국 화강암이 얼마다 단단한지 알수있는 증거다. 유럽의 대리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여 1300년이나 풍우에 시달려도 각이 살아있다.

3층 석탑의 몸돌 아래에 보면 돌을 한칸 더 끼운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탑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으로서 아마도 백제에서도 이미 시작된 양식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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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호 낭혜화상 탑비 이다. 낭혜화상은 성주사를 창건한 스님이다. 1300년 이상 지났는데 오석의 탑에 음각으로 얕게 새긴 작은 글씨를 눈으로 읽을 수 있었다.

지금도 보령 지방의 오석이 비석으로 최고 값에 팔리는 이유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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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지에 있는 5층 석탑과 석등 그리고 저 멀리 3층 석탑이 보인다. 모두 보물이다.

성주사지는 아직도 발굴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큰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5층 석탑도 역시 2층 기단과 1층 몸돌 사이에 돌판을 하나 더 끼워넣은 고려의 양식으로 변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백제의 탑이다.

석등은 지붕 윗부분이 없어져 아쉽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삼국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요즈음 절에 가면 중국풍의 이상하게 모양을 낸 술집 작부같은 무게없는 허접한 석등을 많이 보는데 정말 역겹다. 절집에 그런 석등이 보이면 그대로 나오고 싶다. 

석등은 역시 화엄사 석등이 화려함의 극치이고, 불국사 석등, 부석사 석등이 단순하며 깔끔한 단순절창이다.

여기 석등은 불국사와 부석사 석등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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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곳에 정이간다. 무량사 입구에 있는 도랑인데 이렇게 멋지게 돌을 쌓았다. 물론 근래에 쌓은 것으로 문화재는 아니지만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누구의 생각인지 만든사람에게 감사한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빙그레^-^ 미소짓게 하는구나. 나도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저런 다리 하나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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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낀 무량사 전경이다. 비가 잠시 그친 순간에 안개가 보기 좋게 끼어 얼른 사진을 찍었다. 석등, 5층석탑, 극락전이 모두 보물이다.

특히 2층 목조건축인 극락전은 국보로 승격해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고, 규모도 컷지만 공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5층 탑도 부여정림사지탑만한 감동은 아니지만 국보로 승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탑의 규모가 장쾌하고 전체적 층간의 감축률이 아름다우며 왜 백제의 문화가 훌륭한지 보여주는 물건이다.

미륵사지석탑, 정림사지5층석탑 등과 함께 이 탑도 백제를 대표하는 탑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제일 사모하는 불국사 석가탑도 백제의 아사달이 만들었다고 하지 않은가!

이번 여행은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를 다시 돌아보는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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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솔향기 팬션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일보는 아주머니에게 상체 위로만 찍어달라고 했는데 다리까지 전신을 찍었다.

집에 와서 보니 잘 나왔다. 함께 동행했으며 이틀동안 운전까지 해준 둘째 아들 석영에게 감사하다.

물론 장모님에게 제일 감사하고…아산이가 있었으면 더 줗았을 것이다. 큰 아들 아산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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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청춘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한 그런 시절을 말하는 것이다.

청춘은 이처럼 아름답고 파릇파릇하며 내면에 무한하게 잠재된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 에너지는 비젼이나 열정에 연결된다. 청년들이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보석같은 결실을

우리는 청춘에서 기대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은 환상을 경험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의 청춘은 이러한 벽을 뚫어야 한다.

 

나의 청춘은 어떠했던가? 7080에 청춘을 보낸 나는 집안 일(?)에 종사하던 시간이 많았다.

개인적인 학교 공부보다는 집안 일이 더 많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일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군사정권에 자유가 짓눌려졌던 시절이었다.

짧은 시간에 근대화를 이룩하였던 박정희정권은 나름대로 그 당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박정희 사후 혼란기에 지도자들의 내분 틈으로 전두환군사정권이 다시 들어왔다. 

역시 정치적 자유가 억눌린 시절이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청춘시기는 정확하게 박정희정권 시절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보다는 박정희 정권이 훨씬 더 무서웠다. 자유가 억눌린 상황에서 청춘이 역할을 나타내는 범주는 제한적이다.

내 청춘은 제한적이었다고 추억된다. 내가 나름대로 민주화의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몇군데 기웃거린것도 사실이지만

드러내놓고 민주화를 위해 활동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적 사명에 인생을 거는 용기를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내 청춘의 미래에 대한 욕구 역시 불투명하였다. 어떤 뚜렷한 비젼을 가진것도 아니었고,인생을 걸만한 사명감을 느낀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살아지는 대로 몸을 맡곁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부끄럽지만 내 청춘은 어떤 목표의식도 없었다.

밥먹고 ,나이먹고 그러다 보니 어느날 직업이 생겼고 그 직업에 오늘날까지 봉직하고 있다.

한번 뿐인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가끔하지만 별 뾰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살았다.

다만 대충 살은 것은 아니고 내 직업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였다. 처음부터 교장이 되려고 한것은 절대 아니었다. 교장은 꿈도 꾸지 않았다.

어떻게 교장이 되었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성실성을 경기교육이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냥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근무해왔더니 내 조직이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교장으로 만들어주었다는 표현이 맞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취업에 실패하면 인생을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청춘은 취업에 매달려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두명의 조카가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구박받는것을 보면 그 청춘이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들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도록 어른들이 도와주어야한다. 일자리도 더 만들고 아름다운 공간도 만들어줘야한다.

오늘 아침 그 조카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 처음 7줄은 경기일보에 실린 시인 최문자씨의 글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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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시절의 사진이다. 스캔하다 보니 흐리게 나왔다. 청춘시절의 사진을 다시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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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서울 사당에서 교육전문직 동기회 모임이 있었다. 반정도는 아직도 장학사로 재직중이고 나머지는 장학사하다가 교장과 교감으로 일선 학교에 나왔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세상을 살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청춘은 어떠했을까? 나보다는 더 낭만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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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육 최우수학교상 수상

한국수학교육평가원이 주관한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우리 영덕중학교가 경기/인천지역 최우수 학교로 선정되어 학교표창을 받았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체력이라는 생각으로 수학교육을 열심히 해왔던 결과로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되었다.

우리학교는 3년전부터 수학교육 특성화학교로 지정되어 수원시의 지원을 받아 수학교육을 열심히 해오고 있다.  동아일보에도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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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최우수교로 선정되었는데 글자수가 너무 많아서 경기지역 최우수교라고만 표시하였다^-^

고등학교는 대원외고, 민족사관고, 한일고, 상산고, 경기북과고, 등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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