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읽었다.
1994년에 출간되었으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를 구가하는 책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공부하기 싫어하는 청소년을 격려하는 내용인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아니다.
제목만 보고 청소년들이 많이 고르는데 그런 책이 아니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산문으로 청소년이 읽어도 정말 좋은 책이며 사실은 어른에게 너무 좋다.
내용은 박완서씨가 틈틈히 써왔던 산문을 모은것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그 중의 하나다.
마라톤에서 꼴찌로 달려오는 사람의 끈기있는 행동을 아름답게 표현한 산문에서 나는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런 귀절이다.^-^
계절의 변화에 신선한 감동으로 반응하고, 남자를 이해 관계없이 무분별하게 사랑하고 할 수 있는 앳된 시절을 어른들은 흔히 철이 없다고 걱정하려고 든다.
아아, 철없는 시절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찬탈을 보내고 싶다. 나(Maeng)야 말로 철없는 시절로 단 한번만 돌아갈 수 있다면 ㅋㅋㅋ~
어른끼리 사귈 때도 너무 세련되고, 사교적인 사람에겐 정이 안가고 경계심을 먼저 품게되고 어느 한구석이라도 시골뜨기스러움이 엿보이면 사귀어도 좋을 것 같은 신뢰가 간다.
그러니까 내 시골뜨기성에의 그리움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 같은 걸 거다.
나(Maeng) 도 구구절절히 공감한다. 나에게 촌스러움은 숙명이다. 다만 내가 미술을 하고 시를 쓰면서 촌스러움을 약간 극복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길을 가다 싱아를 씹고, 찔레꽃을 꺽어먹는 사람을 보면 그는 무조건 내 친구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 꾼이고 싶다.
노인을 보고 있으면 슬퍼진다. 보기싫고 흉하다. 그런데 노인이 정말 행복해 보일 때는 무릎으로 엉겨드는 손자를 어루만질 때다.
그 어린놈은 노인의 얼굴이 늙어서 보기 싫다는 것도 그 노인의 위치가 무력하다는 것도 아직 모른다.
따습고 말랑하고 정이 흐르는 손길이 본능적으로 좋아 따르고 있을 뿐이다.
어떤 노인도 어린 손자와 있을 때 슬프지 않다. 생명이 소멸돼 갈 때일수록 막 움튼 생명과 아름답게 어울린다는건 무슨 조화일까?
나(Maeng)도 늙으면 손자와 놀아야겠다. 벌써 기대된다. ㅎㅎㅎ~
또 요즈음 나(Maeng)는 초저녁에 자고 새벽에 일어나는 버릇이 있는데
박완서씨도 오랜 버릇인 초저녁부터의 숙면과 새벽의 각성과 그 때부터 날 밝기까지의 완벽한 고독 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