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종교하면 불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를 들 수 있다.
순서는 종교가 일어난 순서로 열거하였다.
3가지 종교 모두 외래종교이다.
글로벌시대에 토종, 외세 가릴 것은 없지만 하여튼 순수한 국산이 아님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이슬람교는 세계의 모든 나라 백성들을 형제처럼 생각하는 四海同胞主義적 종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없어서 논점에서 제외한다.
불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한국적으로 토착화되었다.
그 분명한 증거로는 세계 불교문화에서 유래가 없는 삼성각이다.
모든 사찰에 가보면 삼성각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칠성님, 산신령님, 독성님의 삼성을 모신 곳이다. 건물 이름이 삼성각 인 이유는 모두 불교 밖에서 수용한 신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한다. 3명의 신은 모두 우리 고유의 신앙에 나오는 신들이다. 절에 처음 가보는 사람도 삼성각 문을 열고 걸려있는 토속신의 얼굴을 보면 이것이 불교의 산물이 아님을 알 수있다. 산신령님은 우리 민족 고유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난 만사형통의 신이다. 열에 아홉은 호랑이를 타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 웃음이 절로난다. 물론 스님들은 산신령님에게 제단을 차리고 절을 한다.
크리스트교는 구교(카톨릭)와 신교로 나뉘는데
구교 ,즉 성당에 가보면 오랜 역사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몰라도 너무나 형식적이고 작위적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신부의 설교와 읍조리는 대사는 라르고의 느릿한 일정한 리듬을 타면서 무슨 주술사의 주문 외우는 소리 같아서 싫다. 아무 맛도 없는 동전만한 밥풀과자는 왜 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김수한 추기경은 마음에 든다. 그분의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20여년 전으로 기억된다. 추기경은 “1784년 이승훈에의해 카톨릭이 우리나라에 전파될 때 조상제사가 우상숭배적 요소가 있다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는데, 조상에 제사지내는 것은 우리의 문화이며 우상숭배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는 과거의 일을 반성하고 사과한다”. 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하긴 로마교황은 1940년 일본신사참배까지 인정하고 신사참배는 천주교와 상관없다고 했으니 추기경의 발언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조선말 순교한 카톨릭 성인들의 신앙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그분들은 그 시대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김수환 추기경의 일화는 또 있다. 역시 20여년 전의 일이다. 정확하게 누구의 다비식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명한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김수한 추기경이 조문을 하러왔는데 기자들은 과연 추기경이 어떻게 조의를 표할지 궁금하였다. 보통사람 처럼 절을 할것인가? 이것이 궁금하였던 것이다. 추기경은 망설이지 않고 성큼 성큼 걸어나가 엎드려 절하였다. 기자들이 놀라서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죽은자에게 절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추기경의 대답은 명쾌하였다. “자네들은 친구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절을 안하나?”
나는 신교도(프로테스탄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카톨릭의 분위기가 싫다. 성당에 가면 엄숙한 분위기가 싫고, 주술사의 주문 같은 신부의 인도가 싫다. 개신교에 가야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개신교가 휠씬 인간적이다. 노래도 씩씩하고, 목사의 설교도 활력이 넘친다. 한마디로 생기가 넘친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간다. 오늘도 주일예배에 다녀왔다. 교회의자에 조용히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고, 지난 주에 잘못한 것이 있나 반성하였고, 큰 아들 아산이를 돌봐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부모님, 장모님의 건강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평안하도록 기도하였고, 마지막에는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아무개를 위해서도 그가 잘되기를 기도하였다.
목사님의 언변은 유창하였고 표정은 부드러웠으며 아주 겸손하신 분이셨다.(다만 목사의 설교가 질의응답은 없고, 한 시간 내내 일방적인 강의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그런 독재적인 강의가 어디 있나? 한 시간 내내 혼자 떠들고 수백 명이 앉아서 지당하십니다! 하고 고개 끄덕거리며 아멘하며 듣기만 하고……이런 설교방식은 언젠가는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철저한 목사편의주의지 이게 무슨 설법이냐? 그런식이라면 나도 하겠다.이점은 카톨릭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석가도 그렇고 공자도 이렇게 하지 않았다. 논어를 보라! 항상 제자의 질문을 받고, 응답한 내용이다)
더욱더 한심한 것은 개신교의 민족문화 觀이다. 개신교의 韓國文化에 관한 이해는 문화의 基本槪念도 모르는 수준이다. 요즈음 애들 말로 무개념이다. 아무 생각 없는 것이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학습을 통해가진 공통된 행동양식 또는 생활양식이다”.
한국민족이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명백하게 신앙이 아니며 생활양식인 것이다. 그것을 크리스크교리에 위배된다고 부모님 제삿날 절하지 않고, 추도식을 올리는 것을 보면 세상에 이런 편견과 아집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조상에 제사지내고 절하는 것을 영원불변의 신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생활양식이고 문화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변한다. 언젠가는 제사가 없어지는 때도 올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속성인것이다. 조상에 절하지 않는 것을 십계명을 지키는 金科玉條처럼 떠받들고 있는 改新敎는 한국카톨릭에서 배워야 한다.
원래 한뿌리였던 로마교회가 로마카톨릭과 그리스정교회로 갈라진것도 우상숭배문제 때문이었다. 아시아의 훈족에 쫏겨 로마영토에 들어온 미개한 게르만족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표식이 있어야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만들어 낸것이 마리아상과 십자가이다. 이것을 동로마에서 우상숭배라하여 반대하였고, 이것이 결국 로마카톨릭과 그리스정교회로 갈라진 이유가 된것이다. 결국 오늘날 카톨릭과 개신교에서 모두 사용하는 십자가도 그리스정교회에서는 우상숭배인것이다. 내가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분륜인가?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기보다 민족문화로 보는 개신교의 넓은 아량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내가 믿지 않는 다른 신에게 절하면 뭐 크게 덧나나?
그게 무슨 큰 죽을 죄라고……다원화된 사회에서 많은 종교가 서로 어루려져 공동체를 이루며 더불어 협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믿는 신앙이 소중하면 남의 믿음도 존중해햐한다. 자기가 믿는 신은 위대하고 남이 믿는 신은 악마인가?
세상에 이런 아집과 독선이 또 어디에 있나? 김일성주의 말고는 없다.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은 부처님에게도 절하실 분인것 같다.
나는 어떠한가? 내가 불자는 아니지만 불전에 여러 번 절한적 있다.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불법이야 말로 얼마나 심오한가!
인생의 참모습은 고통이며,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고,
욕망을 끊는 방법은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는 길이며,
욕망을 끊으면 해탈하여 니르바나( 涅槃 )의 세계로 간다는 것이다.
불교를 믿느냐고?
아니다 좋아할 뿐이다.
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