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일기♠ 다 좋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좋지만


세상에는 내 맘에 맞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때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만난다.


 


다행이 잠간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이면 좋지만


계속 해서 만나는 사람이면 정말 어려운 때가 있다.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해보지만


역시 잘 안되면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냥 내버러둔다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을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인것 같다.


 


공자도 제나라의 안영에게 배척당했으며 평생동안 수많은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도가, 양자들과 피나는 논쟁을 벌여야했고,예수님도 고향사람들이 자신을 불신하자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탄식하였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 꼴이 좀 우숩다.


그러나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속편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사람은 원래 선한가?

 


맹자


 



순자



 


 


 


맹자(孟子)는 인간이 육친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이웃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선천적인 것으로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라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였다. 




결국 사단(四端)은 인간이면 다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인데 이 사단지심에서 성선설(性善說)이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어린아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어린아이가 허우적대는 급박한 순간에 어린아이를 구해주면 부모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을 계산하고 어린아이를 구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자연스럽게 구하려는 이 마음, 측은(惻隱)지심을 그 첫 번째로 손꼽음으로써 자신이 주장한 성선설의 핵심이 바로 인(仁)의 단서인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임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는 유가에 있어서 대사상가 였으나 이단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은 순자의 제자였던 한비자와 이사가 법가(法家)를 부르짖고 분서갱유를 촉발시킨 원인제공자이며, 순자가 성선설에 대항하여 인간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함으로써 마치 악마의 화신으로까지 느껴지는 선입견 때문이다.





순자(荀子)에 의하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 그것은 본능(本能)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본능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소리와 좋은 빛깔을 추구하는 욕망으이다. 그런데 이와같은 본능을 잘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작위(作爲)라는 것이다. 인위(人爲)라고도 불리어질 수 있는 작위에 대하여 순자는 설명하고 있다.




무릇 예의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작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옹기장이가 진흙을 쪄서 질그릇을 만드는데 질그릇은 옹기장이의 작위에서 생겨난 것이지 본디 사람의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함으로 성인의 예의법도에 의해 변화시켜야 한다는 화성기위(化性起僞)설을 주장하였다.




맹자가 성선설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인간사회의 타락은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이며 그러므로 참된 용기를 함양하여 이것을 없앨 수 있다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주장하였다면 순자는 성인(聖人)은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킴으로써 나쁜 악을 교정할 수 있다는 화성기위(化性起僞)를 주장하였던 것이다.(여기서 성인은 공자와 같은 인물을 말하는 것이다)




요즈음 성선설과 성악설을 읽으면서


순자(荀子)에 대하여 생각하게되고 왠일인지 나는 순자의 생각에 더 끌리고 있다. 딱히 맹자가 틀렸다기 보다 순자의 생각이 더 일리가 있다는 마음이다.


(유림의 저자 최인호는 4권에서 성선설과 성악설을 말하면서 두 사상은 어느 것이 옳고 그른것이 아니라 둘다 맞는다고 볼수 있고, 대립적 사상이 아니라 병립적 동위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도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그러나 나는 순자에게 더 끌린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 일기♠ 로맨틱홀리데이


 


 





 


어제 밤에 아주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사랑’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 보아도 좋다……


 


맨위에 사진에 있는 아이리스역의 케이트윈슬렛이 마음에 들었다.


카메론디아즈보다는 명성에서 뒤지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케이트윈슬렛이었다.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수세미






 


봄에 아버지가 마당에 수세미를 심으셨다


오늘 아침 2층 베란다 까지 올라온 수세미 꽃을 보고 놀랐다


세상에! 저렇게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단 말인가?


서둘러 카메라를 찾고 셔터를 눌렀다.


 


보통 늙은 아내의 손을 보고 수세미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꽃을 보고 수세미 같은 손의 내면에


젊은 시절 아름다웠던 아내를 연상해보면 어떠리……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조광조와 노무현




 


최인호는 그의 신작소설 유림(儒林)에서 정암 조광조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면서 다루고 있다. 나는 유림의 조광조 편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머릿속으로 계속 노무현대통령을 생각하였다.


 


이율곡은 조광조를 동방4현이라고 부르며 평생 존경하였고,  이황도 조광조는 학문에 뜻을 두어 옳은 정치를 하였으나 공의 뜻이 너무 속히 하고자 하는 데에 잘못이 있었다고 하였다. 성리학자 송시열도 평생 조광조를 흠모하였다.




그러나 조광조는 공자의 사상을 현실정치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썼던 구도자였다. 격랑의 역사를 온몸으로 부딪쳐 유가의 도를 실현하려다 산화한 유교적 이차돈인 것이다. 따라서 조광조의 실패는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구도의 궁극(窮極)이었으니 조광조야말로 순교자인 것이다.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하면서 급진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의 개혁 중심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낡은 풍습과 사상을 유교적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왕도정치에 따라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이 몸소 유교의 이념을 실천 궁행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이다. 그러나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은 보수파인 훈구세력의 반발로 하루아침에 전라도 능주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37살의 젊은 나이에 사사됨으로써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노무현 대통령……


그는 고졸의 학력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으나 법조인의 길로 들어선 이후 주변인의 신세였을 것이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문제에 깊숙이 관심을 갖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보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자, 힘이 약한자, 사회적 소수의 입을 대변하려 애썼다.




김영삼대통령의 천거로 정치에 발을 들이고,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인으로서 나섰다. 국회의원 당시 안전하게 다시 당선될 수 있었던 서울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민주당 간판으로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부산에서 출마하여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정서를 온몸을 던져 타파해보려고 했지만 낙선하였다. 이 낙선은 지금도 인구에 희자되는 장열한 전사였다.




그러나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여러 가지 급진적인 개혁노선을 추구하였다. 토지공개념, 종합부동산세,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행정복합도시육성, 공무원노조의 허용,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법 등 주로 분배의 정의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을 시행하여 블루칼라층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신설, 확충하고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으며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일에도 힘을 기울여 최초의 한명숙 여성총리가 태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유경쟁을 통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역할이 위축되고, 경제가 침체되고, 경제운용이 좌파적이라는 논쟁을 일으켰으며 언론에서는 공공연히 좌파정권으로 규정지어졌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 과연 균형발전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의심스러우며 노무현 정권의 수도이전과 지방혁신도시 육성에 따른 땅값 상승은 전국을 부동산 투기 지역으로 만들었고,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집값은(서민용이라는 32평 국민주택 강남구 대치동 아아파크 아파트 15억)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햇볕정책을 계승한다면서 미국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실험이 인공위성이라고 우기다가 미사일로 판명된 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을 공격할리 없고,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거리가 짧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황당한 발언으로 안보불감증과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합리화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바짓가랭이나 붙들고 있을것이냐는 발언으로 자주성을 높이려했지만 세상에 자주하기 싫은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왕위 계승에서 중국황실의 승인을 받지못할까하여 전전긍긍한 것은 또 얼마였던가! 미국에는 작전권 단독행사하겠다고 큰소리 치면서 왜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수세적인가? 고구려는 물론, 백제와 신라까지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중국에는 왜 과감하게  대처하지못하는가? 지구상에 혼자서 자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나라는 없다. NATO의 회원국들이 우리나라만 못해서 집단방위체제를 역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놈의 헌법 발언이나 , 쪽팔려서 단임제 대통령 못해먹겠다. 는 등의 발언은 그렇다 치고,  대통령이 선관위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낸것은 억울한 백성은 누구든지 와서 두드리라는 신문고를 살아있는 권력인 대통령이 억울해 못살겠다고 두들기는 격이니 참으로 보기에 딱하다!


 


그러나 한편


좌파세력이건, 반미세력이건, 참여정부 실패세력이건 모두다 합쳐 한나라당과 1:1로 사생결단으로 정면 승부를 해야한다고 훈수하는 DJ에 대해서도 그것은 망국적인 지역감정에 다시한번 편승하려는 것이며, 결국 호남을 고립시킬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는 노무현을 보면 지역감정 타파에 목숨이라도 걸듯한 그의 대국적인 면을 본다.


 


언론에서 공공연하게 친북, 좌파, 반미로 규정하는 노무현정권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20%를 밑돌고, 현직대통령의 임기가 7개월이나 남아있는데 노무현과 결별하는 것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살길이라고 대통령이 만든 정당에서 보트피플 처럼 뛰어내리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오늘 나는 조광조가 훈구파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것과 노무현 대통령의 실책을 동일계열에 놓고 생각하게 된다.


 


옳은 정치가였지만 너무 일을 속히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이황의 조광조 인물평을 떠 올리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진보노선과 함께 대책은 부족하면서 무조건적 자주로  대변되는 그의 급진적 개혁정책이 적절한 시기를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실패한 정치가 조광조……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


지금 20% 대의  지지도를 놓고 보면 노무현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인 것 같다.


그러나 더 자세한 평가는 조광조처럼 후세의 역사에서 보게 될 것이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나들이

3박 4일간 나들이를 했다.


아내가 방학이라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작은 아들도 방학이라 놀고 있어서


3명이 함께 속리산에 다녀왔다.


 


속리산 법주사 옆에  동생이 쉬기 위해 집을 한채 사놓았는데


나보고 아무때나 와서 편하게 쉬고 가라고 해서 그동안 서너차례 다녀온적이 있다.


수리를 말끔하게 해서 사용하기 편하고,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며, 무엇보다 물과 공기가 좋다.


 


동생의 별장에서 3박4일간 빈둥거렸다.


나는 법주사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국보 제55호 팔상전은 정말 아름다운 탑이기 때문이다.


팔상전은 하나의 목조건물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목탑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탑 중에서 제일큰것이다. 


 


법주사는 벌써 여러번 다녔고, 또 다음번에 들르면 되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로 방에서만 있었다.


아래의 법주사팔상전 사진은 작년에 별장에 갔을 때 법주사에 들려서 찍은 것이다. 


 


뒹굴거리면서


나, 아내, 아들 이렇게 3명이 놀았다.


밥해먹고, 술도 적당히 마시고, 단잠을 잤다.


 


둘째 날은 3명이 하루 종일 책만 읽었다.


나는 복직 문제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으나……가족여행은 좋았다.


 


편도 2시간 30분 거리여서 거리가 조금 먼것이 흠이지만


동생은 좋은 별장을 마련한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한옥집이 보이면


무턱대고 찾아들어가 집이 좋습니다. 구경해도 될까요? 라고 물으면


모두 반가워하며 집안으로 들여 구경기켜 주었다. 3집이나 구경했는데 비교적 마음에 드는 집도 있었다.  


10년 후에는 내가 살 집을 지을 것이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전투



 


 



인간의 치아는 사랑니를 빼면 28개인데 보건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나 65-74세 인구의 평균 잔존 치아 수는 12개 이며, 75세 이상은 평균 2.46개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치아 28개 중에서 상실한 치아가 하나도 없다. 몇 개는 금으로 씌우거나 때우기는 하였지만 원래의 이는 하나도 뽑지 않으셨다. 올해 84세이니 치아 복은 타고난 듯하다. 그리고 양치질을 정성스럽게 하신다.




나는 다행이 아버지를 닮아서 치아는 건강하게 타고 났다. 나는 28개 모두 건강한 이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씌우거나 치료한 이가 없다.




오늘 아버지를 모시고 치과에 갔다가 기다리기 심심하여 치과 진료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충치가 한개 있었다. 놀라웠다. 이유인즉, 치솔질을 잘못하여 잇몸쪽의 치아 밑부분이 붉게 드러났는데 그 부분에 음식물이 끼고, 그러다 보니 충치가 생겼다고 했다. 옆이 아닌 위아래로 하는 칫졸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하여튼  치아 건강은 자신하고 있었는데 충치가 있다니! 나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니……




마취를 하고 충치를 긁어내고 치아 색깔 나는 것으로 메웠는데 우연한 기회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면 이미 치과질환이 상당이 진전된 상태이기 때문에 치아의 신경을 죽이고, 금속으로 씌우는 치료를 하게 되는데 나는 오늘 충치 조기발견으로 때우기만 하였다.




내가 태어나 치과 치료를 받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충치 치료 후 간호사가 강권하여 예정에도 없던 스케일링을 했다. 


정말이지 이건 전투다! 돌아가는 기계음에 신경은 곧추서고,  이는 시리고, 끝나고 나니 아랫도리에 땀이 배었다. 스케일링! 안하고 살수는 없나.? 이놈의 전투!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Kant


 




 


 


18년 전에 접시를 여러개 만들었는데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주기도 하고, 사용하다가 깨지기도 해서 이것 하나가 남았다.


접시가 크기 때문에 주로 과일을 깎아 담아낼 때 쓴다.


 


 


오늘 다시 보니 옛날 필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은 이렇게 쓰지 않는다. 그 동안 내 필체가 많이 변했다


 


언제 한번 도자기에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는 작업을 다시 하고싶다.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일기♠ 7076205 CALVIN 30 M2

< M1 소총>

<CALVIN 30 M2  소총>

나는 ROTC장교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놈의 키가 문제였다. 키가 작아서 지원할 수 없었다. 최소한 164cm는 되어야하는데 내 키는 정확하게 163cm으로 1cm가 모자랐다. 하는 수 없이 사병으로 군에 입대하여 3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육군 병장으로 전역하였다.

 

훈련소에서는 한국전쟁 때 쓰였던 M1소총을 지급받았는데 미군병사들이 쓰던 총이어서 무겁고 힘들었다. 다행히 훈련병 시절을 마치고, 소속부대에 와서는 CALVIN소총을 지급받았는데 아주 가벼워서 좋았다.

 

점호시간에는 부대장이 여러 가지를 묻는데 개인화기번호를 묻기도 하였다. 그때의 내 대답이 생각난다.

 

옛! 총번호 7076205 CALVIN 30 M2 !

 

군인이 자기 총의 고유번호를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전쟁이 나면 총은 목숨이기 때문이다. CALVIN 역시 6.25때 M1소총과 함께 쓰이던 미국 소총인데 CALVIN 30 M2는 가벼워서 좋고 자동으로 연속 발사되는 좋은 총이었다. 따따따따!

아! 7076205는 오래전에 폐기되었을 것이다. 칼빈소총은 키가 작은 나에게 딱 맞는 총이었다.

 

자식들이 나를 닮아서 역시 크게 자라지 못하였다.

큰 아들은 176cm로 평균은 될성 싶은데 하필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다 보니, 사진을 보면 서양아이들 틈에서 작은 키로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둘째이다. 173cm여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보니 제일 앞 줄에 서있었다. 자식들이 나보다는 10cm가량 크지만 그래도 요즈음 젊은이들의 키에서는 작은 편에 속한다. 작은 아들은 키 크는 클리닉에 보내 달라고 조르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검사해보니 이미 성장판이 닫혔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지난 달에 아버지가 입원하느라 병원에서 키를 쟀는데 놀랍게도 나와 똑같은 163cm였다. 음……내가 그래서 163cm였구나!

 

 

인식론에서 경험론을 주장한 철학자 로크는 사회계약론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은 침해당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을 가진 상태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화로운 사회에서도 분쟁과 불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로크는 이러한 분쟁을 막고 인간의 자연권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인간들이 상호간의 계약에 기초한 정부를 구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의 자유는 오직 동의에 의해서 부여된 위임에 따라 입법권이 제정하는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다고 하였다.

결국 자연권 즉,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고 공동의 법을 만들었다는 것이 사회계약론의 요체이다.

나는 어디 가서 말싸움을 해도 시쳇말로 씨가 잘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싸움을 잘 하지 않는다. 덩치가 작으니 힘이 약할 것으로 생각하는지, 크게 소리를 내도 내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저 법이 보호해주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혹자는 키 작은 사람들이 더 훌륭하고 유명한 사람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강감찬  157

등소평  158

볼테르 160

제임스 메디슨 (미국대통령) 163

찰스1세 (영국의 왕) 163

피카소163

오나시스165

박정희 160

남기완교수 163

 

그러나 이것은 모두 키 작은 사람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말속임이다. 위의 사람들은 키만 작고 능력은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키가 크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는 예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나는 내 키를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내 키가 한 뼘만 더 컷더라면, 그래서 183cm라면, 무엇이 돼도 됐을텐데……

 

엊그제 국방부에서 장교가 되는 요건을 완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뒤져보았더니

키를 164cm에서 162cm로 내렸다고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키가 더 큰데? 그것도 인권인가? 요즈음은 웬만하면 다 인권에다 갖다 붙이는 세상이니 하여튼 요즈음 같은 기준이라면 내가 장교로 복무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을 보고나서 키로 품평한다.

 

키도 크더라

키만 크더라

키도 작더라

키만 작더라

키는 크더라

 

한 음절 밖에 안되는 단어 ‘키’ 하나만 갖고 모든 품평이 충분하다!

정말 키는 대단한 단어가 아닌가!

 

내가 20대 후반에 혼인 말이 오갈 때,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키를 이야기 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그들이 한말은 물어보지 않아도

 

키도 작더라!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

♠일상이야기♠ 실수의 연속


 


뻔히 잘못인줄 알면서


순간을 참지 못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만다.  한 두번이 아니다.


뼈있는 말을 하고 나면 다 후회스럽고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낭패를 본다.


그러나 매양 참을 수는 없다. 결국 인간관계가  실수의 연속이다.




며칠 전 평생을 교우하는 친구들과 식사자리에서 뼈있는 말을 했는데 자꾸 후회가 된다.


바라건대 내가 악의가 없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쨌거나 하고 싶었던 말을 했더니 속은 후련하지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가인 선생님은 내가 존경하는 시인이며 소설가이다. 


그 분의 시를 적어두었는데 오늘 생각나서 옮겨본다.




<네 마음대로 해봐>  -가인 김루어-




천황산 몇 번째의 등서리


벼랑 위에 뿌리내려 어깨를 떨던


오리나무, 새싹의 촉이 보인다




두껍고 단단한 각질을 비집고


비음(悲音)의 바람소리에 올랐다가


하늘 틈서리의 맹목적인 자유(自由)와


살을 섞으며 진저리친 결과인 게야




그동안 힘들었지?


이젠, 네 맘대로 해봐




카테고리: 일상일기(천리안)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