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일기♠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기분을 살필 때다!



 


< 이명박을 대통령에 당선시킨 그 유명한 청계천 광장이다.  이명박은 32살에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었고


서울시장 재직시 청계천 되살리기를 위해 상인들을 8000번이나 만났다고 했다>


 



 


  몇 년 만에 귀국하여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큰 아이는


 


그 동안 대한민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며 서울지도를 구해서 구경 간다고 한다.


 


변화된 한국을 다시 말하면, 이 시간 정확한 한국의 위치를 보고 싶은 것이다.


 


사실 나도 청계천을 아직 구경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함께 가자고 한다.


 


이렇게 세명이 길을 떠나기로 했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다. 그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 따라다니는 여행은 이제 싫단다.


 


큰아이가 둘째를 불러 세워 타이른다.


 


네말이 맞다 이제 우리가 엄마 아빠 따라다닐 나이는 지났다.


 


그러나 지금은 자식들이 엄마 아빠의 기분과 마음을 살필 때다.


 


이번이 아빠의 금년 휴가 마지막이고, 함께 가면 가족여행이 되는데


 


가는 것이 옳다고 설득 반 나무람 반으로 동생을 타이르니


 


둘째 아들은 썩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나섰다.


 


승용차를 가지고 가지 않고 전철을 이용하는 것을 알고 둘째는 놀라면서


 


다시 한 번 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명분에 밀려 결국 4명이 가족여행으로 서울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우선 이명박을 대통령까지 당선시킨 그 유명한


 


청계천을 보고


탑골공원,


경복궁,


인사동,


명동


이런 순으로 서울 순례를 하였다.


 


전철을 앉아서 갔고, 돌아오는 길은 서울역에서 무궁화 좌석을 타고 수원까지 왔다.


 


아주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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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이름을 듣는 순간 정확히 생각났다.

 


 



 


오늘 경복궁을 들어가면서 해설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내자료를 보니 3:30분에 해설사 안내가 시작된다고 해서 두리번 거렸더니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여성이었는데 삼심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음성이 고요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이 빛났다.


 


이상하게 다리가 아파서 잘 따라 다니지 못했는데


 


해설하는 분이 나를 기다린다는 인상을 약간 받았다.


 


내가 질문을 했더니 대답해주고 나서 “맹기호”선생님이시지요? 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긴가민가 했는데 내가 질문하는 목소리를 듣고 맹기호선생님이라는 확신을 가졌단다.


 


학생 때도 나를 좋아해서 25년  이상 지났지만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김은숙!


 


김은숙! 이름을 말하는 순간에 정확하게 생각났다.


 


고등학교 2, 3학년을 가르쳤으리라. 얼굴이 학생 시절보다 약간 성숙하여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름을 말하는 순간, 확실하게 기억났다. 김은숙의 고등학교 시절 모습이 그 얼굴에 있었다.


학생시절에도 얼굴이 예뻤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있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었고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중년의 나이에도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였다.


사십중반이라 했는데 나이 보다 훨씬 젊어보였다. 맑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일본어관련 학과를 진학한 것도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해설하고, 일본인에게도 해설한다고 했다.


 


오늘 김은숙 덕분에 고궁에 대하여 많은 공부를 하였다. 김은숙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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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noodles

광천에서 수원으로 올라오면서

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였더니 모두 찬성하였다.

나는 국수를 잘 먹는다.

수원에서 국수로 유명한 집은 내가 거의 다 안다.

경기과학고등학교 입구에 있는 국수집이 유명하고

동수원 가구거리에 있는 국수집이 또 유명하다.

두집 모두 불친절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집을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음식맛이 좋은 집일 수록 서비스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상호가 산더리국수집이던가?

상호도 조금 이상하다. 30년 전통의 비빔국수집이라는 부제를 크게 달아놓았다.

물은 물론 셀프고 더욱 이상한 것은 음식을 먹기 전에 돈을 내야한다는 점이다.

점심시간에는 자리가 없다. 저녁시간이라 식당은 한가하였다.

벽에 써있다

“물은 셀프이며 음식값은 선불입니다.”

 물이 왜 셀프냐? 워터지!

좀 웃기기는 하지만 맛은 좋다!

먹으면서 내내 한정식 집에 모시고 가지 못한

장모님 생각이 났다. 국수집에라도 모시고 왔으면 좋았을것을…….

사진을 두장 올린것은 촬영한 사람은 항상 빠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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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세상에! 놀랍고도 놀랍다!



 


아내가 장모님이 쓰시는 컴퓨터 앞에서


무슨 노트를 발견하고는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자세히 보더니 오바마 취임 연설문이란다.


이것을 무엇때문에 쓰셨느냐고 물으니


장모님 왈 : 오바마 취임연설문이 너무 좋아서 베끼셨다고 한다.


 


세상에! 75세된 분이 오바마연설문을 베끼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그것을 해석하려 했다니!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홀로 아파트에서


13쪽이나 되는 장문의 오바마 취임연설문을 베끼는 마음은 무엇인가?


 


도대체 장모님의 지적호기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장모님의 독서력은 일찌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도 아주 잘하신다. 한글워드프로세서는 기본이고


엑셀, 파워포인트, 심지어 태그까지 하신다. 구청문화센터에 나가서 배우셨는데


지금은 배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수준이라는 정도는 들어서 알고있었다.


 


나는 어떤 때 잘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찾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때가 있다.


인생을 반이상 살았는데 이제 모르는 한자를 배워서 언제 써먹을까 하면서 넘어가는 것이다.


 


지적호기심은 모든 창조의 근원이다.


 


인간과 우주의 근원은 무었일까?


시간은 왜 흐르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행복은 무엇인가?


 


이런 모든 지적호기심을 풀어나가고 충족시켜 나가는 가운데


인류의 문화와 학문은 발전해 온것이며 창조라고 하는것도 결국 지적호기심의 발로이다.


 


우리 장모님의 지적호기심의 끝은 어디인가?


 


정말 존경스러울 뿐이다.


 


사진 찍을 줄 알았으면 잘 쓸것 그랬다며 손사레를 치셨지만


급하게 쓴 표시가 나기에 더욱 빛이 났다.


 



사진을 올리며 자세히 보니 손에 신문을 들고 계신다. 음….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를 배웅하고 광천역에 나가서 내일 온양온천가는 기차표를 사러 가신다고 했는데


혹, 역에서 남는 시간 동안 읽으시려고 가지고 나가시는 것은 아닌가?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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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머리가 희게 변한 것만 다르다

어제 식구들을 태우고 충청남도


광천에 계신 장모님을 찾아뵈었다.


오랜만에 두 아들을 모두 데리고 갔다.


 


반가워하셨다.


광천에 홀로 계신 장모님을 생각하면 늘 죄송한 마음 뿐이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혼자 사시게 되었다.


올해 75세가 되셨다.


 


생각해보면 내가 결혼할 때 장모님은 49세 셨다.


내가 결혼한지 26년이 되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건만


내가 보기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얼굴이 그대로 이고 변함이 없으시다.


다만 머리가 희게 변한것만 다르다.


 


하룻밤을 자고 가까운 수덕사에 모시고 가서


맛있는 한정식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는데


아내가 자꾸 반대하며 집에서 점심 먹자고 해서 기분이 좀 상했다.


점심을 드는둥마는둥 하고 집을 나왔다.  


 


오늘 명절 용돈으로 20만원을 드렸다.


 


내일 여고 동창 여럿이서


온양온천으로 목욕을 가신다고 하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광천의 아파트 거실에서 저녁상을 맞다.


 


 


 



 


내가 떠나기 전에 아파트 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하자고 제의하여 즉석에서 사진을 찍었다. 


 



 


두 외손자와 함께….아이들은 할머니를  좋아한다.


 



 


친정 어머니와 함께……이 사진 찍을 때가 제일 좋으셨겠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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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기♠ 어미도 흐느껴 운 밤이 여러날 이었으니…

 



 


<화성 행궁의 봉수당 건물 뒷면에서 찍었다. 팔작지붕 밑의 겹처마가 아름답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서 아들과 사진을 찍었다.>



큰아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싸하다.


고등학교 2학년에 유학을 떠났으니


북미 대륙 전체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나라에서


외로움이 어떠했을까?




제 어미도


밤에 아들이 보고 싶어 흐느끼며 운 밤이 여러날 이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었하랴?



요즈음 큰 아이가 집에 와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의 인생에서 제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하다.


나도 설 연휴여서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문득 큰 아이와 바람이나 쏘이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의했더니 고맙게도 좋다고 한다.


아내는 작은 아들도 데리고 가라고 말했지만


녀석은 방에서 오락에 빠져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가슴이 싸한 것은 큰 아이다.




둘이서 화성행궁 나들이를 하였다.


무척 추운 날씨다.


추워서 덜덜 떨면서도


속이 깊은 아들은 아버지와 사진을 찍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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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We had a heavy snow yesterday.

겨울 가뭄이 깊다고 하더니


 


오랜만에 눈이 왔다.


 


설을 맞아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는 연휴에 눈이 오다니


 


어찌 보면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눈이 오는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지만


 


겨울가뭄이 너무 심하여 저수지 마다 물이 비었다. 눈은 와야한다.


 


다만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할 일이다. 고향길에 사고가 나서는 안된다.


 


눈은 어디에나 내린다. 우리집에도 내렸다. 아름답다 ^-^


 



 


1970년대 초반에 지어 4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내집!


 


나는 여기서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을 낳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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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아! 1370년 동안 잠자다 깨어나다!

요즈음 며칠 동안 머리속에는 미륵사지석탑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미륵사지석탑 해체 도중 국보급 문화재가 발견된 것은 나에게 큰 의미로 각인되었다.


 


나는 미륵사지석탑을 여러번 방문하였다. 두 아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우선 장엄한 그 규모에 놀라고,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겨간 우리나라 석탑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탑이다. 전체적인 규모도 크지만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 또한 뛰어나다.


 


 



 


 



 


전북 익산 미륵사지석탑 해체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들. ①미륵사 창건과 부처의 사리를 모시게 된 사연을 기록한 금제사리봉안기. 가로 15.5cm, 세로 10.5cm의 금판에 음각하고 붉은 칠을 했다. ②원형 합 ③백제의 머리꽂이 장식인 은제관식과 금제소형판.


 



 



 



 


 




 


 



2009년 1월 20일 동아일보 기사를 붙인다. – 익산 윤완준기자 –




문화재청이 19일 공개한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석탑의 사리장엄구(사리호와 사리기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는 금제사리호(항아리)의 공예 수준이 높고 사리봉안기()를 통해 미륵사 창건 내력이 처음 밝혀졌다는 점에서 무령왕릉과 백제금동대향로 발견에 필적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백제의 사리기가 발견된 것은 2007년 백제 부여 왕흥사지 목탑 터의 창왕 시대 사리기(577년) 이후 두 번째이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발견된 금제사리호와 금제사리봉안기를 “국보 중의 국보”라고 말했다.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유물이 발견된 미륵사지석탑 1단의 사리공(사리장엄구를 넣는 공간)과 윗부분 석탑 부재 사이에 회를 발라 밀봉했기 때문에 국보급 유물이 1370년간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제사리봉안기(가로 15.5cm, 세로 10.5cm)는 금판에 글자를 음각하고 주칠()을 했다. 앞면과 뒷면에 193자로 창건 내력을 기록했다. 이곳에 새겨진 창건 연대(639년)는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 미륵사가 창건됐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뒷받침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연모한 서동(백제 무왕)은 밤마다 선화공주가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와 결혼했다. 삼국유사의 미륵사 창건 설화는 무왕이 왕후와 함께 용화산 못가를 걷고 있을 때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타나자 왕후가 큰 사찰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무왕이 들어줬다고 전한다.

그러나 금제사리봉안기에 따르면 미륵사를 창건한 백제 무왕의 왕후는 백제 8대 성씨 중 하나로 유력 귀족 가문인 사택씨 출신으로 드러났다. 노중국(백제사) 계명대 교수는 “사택씨는 성왕이 사비로 천도할 때 지지했던 핵심 귀족이며 좌평은 백제의 최고 관직을 뜻한다”며 “무왕이 사택적덕의 딸 외에 여러 명과 혼인했을 가능성도 있어 (선화공주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이 잘못됐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을 ‘대왕()’으로 표현했다. 백제왕을 ‘대왕’으로 표현한 기록이 나온 것도 처음이다. 이는 백제가 황제국 체제를 유지했으며 무왕의 왕권이 매우 강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리공 중앙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의 핵심인 높이 13cm, 어깨 폭 7.7cm의 금제사리호 내부에는 X선 촬영 결과 또 다른 내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금제사리호는 보주(·구슬) 형태의 뚜껑을 덮었으며 몸체를 위아래로 따로 제작한 이중구조였다. 이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문화재연구실장은 “세밀하고 정교한 당초무늬가 백제 공예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말했다.

금제소형판에는 석탑의 사리 공양에 참여한 백제 관리의 직급이 처음 나타났다. 금제소형판에서는 중부(·행정구역의 하나)의 덕솔(전체 16등급 중 4급에 해당하는 관직)이 참여했다는 명문이 확인됐다. 사리공 바닥에는 유리판이 깔려 있었으며 유리구슬 460개, 금제 족집게, 원형 합, 은제 관식, 도자(), 직물 등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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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주저앉을수 없다, 해결은 법질서와 복지다!

용산 재개발 농성관련 사망자가 6명이나 된다.


 


서울경찰청 김남훈경사도 사망했다.


김경사 어머니가 통곡하고 있다.


여덟살 먹은 딸이 있다고 했다. 슬프다……


 


 


 



 


 


김남훈경사 열결식에서 동료 특공대원들이 울고 있다.



 


 


왜 특공대원들이 이토록 슬픈일을 겪어야 하나?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도 울고 있다.


그는 강직한 경찰이다.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이다.


청장 승진을 앞두고 막판에……


 


농성 25시간만에 왜 그렇게 진압작전을 서둘러야 했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거리로 화염병을 던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차가 화염병에 맞아 불이 붙는다면 어떤 사태가벌어지겠는가?


 


그걸 막지 않는 다면 경찰은 왜 있어야 하는가?” 고 물었다.


 


사망한 김남훈경사의 조사에서 당신이 이루지 못한 법질서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그는 또 경찰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느냐며 반문했다. 그는 그 유명한 포돌이를 창안한 사람이다.


 



 


 


민간인 사망자 5명 중에서 3명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이며 재개발관련 세입자는 2명이다.


폭동현장에서 연행된 28명 중 21명이 전철연 사람들이었다.


전철연? 전국철거민폭연합회라는 단체이다. 그 지역에 살지도 않으면서 얼굴에 복면을 하고


신나통, 염산통을 쌓아 놓고 화염병을 던지고 1천만원짜리 철제 시위탑을 세웠다.


그들은 왜 이렇게 도시 게릴라 처럼 싸우는가? 근본 원인을 생각해보자……


그 단체의 회원들이 영결식장에서 분노하고 있다.



 


 


 


전철연회원 사진이다. 슬프다.



 


 


 


역시 전철연 사진이다. 슬프다. 무엇 때문인가?


 



 


 


 



길음 뉴타운’으로 재개발된 서울 성북구 길음4구역의 경우 원래 이곳에 주택을 보유했던 재개발 조합원들 가운데


 


아파트에 입주한 사람은 15.4%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큰 평수 위주로 재개발을 하기 때문에 작은 단독주택을 보유한


 


원주민은 새집을 살 돈이 없어서 더 낙후된 지역을 찾아서 떠나게 된다.


 


  철거민 가운데 재개발로 가장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세입자들이다.


 


전세보증금을 빼서 새전세집을 구하기 어렵다. 서울시에 따르면 재개발로 터전을 잃는 세입자들은


 


재개발조합에서 32만~102만원의 이사비와 함께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 넉 달치에 해당하는 주거 이전비를 받는다.


 


작년 1분기 기준으로 5인 가족은 1481만원, 4인 가족은 1439만원, 1인 가구는 888만원이다.

이 돈으로 살던 곳 주변에 방을 구하지 못한 철거민 세입자들은 수소문 끝에 서울의 다른 달동네나


 


수도권 도시에 셋방을 구한다. 그곳마저 철거되면 또 쫓겨나는 식으로 ‘재개발 난민’으로 몰락해간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수원시 매산동은 낙후된 단독주택 지구이다. 2007년에 재개발 지역으로 고시 되었는데


 


주민들의 찬성율이 낮아 아직 주택조합도 구성하지 못한 상태이다. 나는 우리 동네의 재개발 사업


 


추진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내 집에서 사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나는 이 집에서 결혼도 했고,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집안 구석 구석에 내 아들이 자란 추억이 묻어있다.


 


나는 그런 이 집을 사랑한다. 나도 물론 언제 까지나 이 집에서 살 생각은 없다.


 


아마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이 집을 떠날 것이지만 그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우리 동네 골목길은 구불구불 아름답기 그지 없다. 이제 이런 골목길도 찾아보기 힘들다.


 


 


용산 재개발 관련 사망자가 6명이나 나온 것은 참으로 슬픈일이다.


 


어떻해야 하나?


 


선진국치고 법질서가 없는 나라가 없다.


 


거리로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문화는 고쳐져야한다.


 


나는 양비론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지만……오늘은 약간 쓸수밖에 없다.


 


역시 재개발로 발생하는 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대책은 있어야 한다.


 


사람을 이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내모는 그런 무지막지함은 절대 안된다……


 


09년 우리나라 예산 지출 284조5000억 가운데 복지 예산이 74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국방비의 2.7배나 된다.우리가 벌써 그런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백성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 백성의 가난은 임금도 어쩔수 없다고 했던가?


 


 


그래도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법을 지키고


 


복지를 튼튼히 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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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일기♠ 세 명의 방문객


 



 



 


식당 아줌마가 사진을 찍으면서 자꾸 손이 흔들리기에 조심하라고 일렀건만


결국 사진은 흔들리고 말았다.


 


위 아래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고 가운데 사진은 아줌마가 찍은 것인데 너무 흔들렸다.


 


 


엊그제


고양교육청에서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이 나를 찾아 먼길을 왔다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바쁜 사람들이 퇴근 후 밤길을 달려왔다.


교육청의 일이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내 사무실을 들어서는 3명을 보고


내가 ” 고양교육청에서 허투르 근무하지는 않았나보다” 라고 말했다


멀고 먼 길을 달려 강화에 까지 나를 찾아오다니


 


최병진선생님, 최윤서선생님, 최정은선생님 이렇게 3명이 오셨다


최병진 선생은 기획력이 탁월한 사람으로 현재 장학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경기교육을 위해 큰 일을 하게 될 사람이다


최윤서 선생은 교원대 화학과를 나온 재원으로


내가 과학장학사를 할때 여러모로 나를 도와주었으며


특히 심성이 고운 사람이다.


 


최정은선생님은 수학을 전공한 분으로


인품이 아름다워 금을 주고도 사기 어려운 사람이다.


 


 


정말 반갑고 감사하였다


그들을 데리고 강화의 횟집에 가서 술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돌려보내고


관사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니


오늘 일이 행복하여 좋은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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