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성교회에 갔다.
주일예배 김용국목사님은 설교를 아주 잘하는 분이다.
언어가 아주 유창하시다. 예배 후 점심으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오늘 수성교회에 갔다.
주일예배 김용국목사님은 설교를 아주 잘하는 분이다.
언어가 아주 유창하시다. 예배 후 점심으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엊그제 선산에있는 5층모전석탑이 너무 완벽하여 정이 가지 않는다는 글을 썼는데
우리 주변에 보면 너무 반듯하고 똑똑한 사람도 정이 안가는 수가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으시대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니 더 정이 안간다.
그 반대의 경우 즉, 똑똑한 사람이 엉성하고 멍한 구석이 있으면 왠지 정이 간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연속극이 있는데 주말에 집에 와서 보는 솔약국집 아들들이었다.
(아들들은 잘못 붙인 제목이다. 그냥 아들이라고 해도 복수로 이해되는데…..)
세상에 약사, 의사, 텔레비젼방속국PD 등 사회적으로 전문직에 속하는 직업을 가진 반듯한 사람들이
엉성하고 멍청한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장가도 못가고 마구 헝클어져 사는 형상을 엮어 가는 드라마였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공부잘하고 반듯했던 사람들이 무너져 가는 현상을 보면서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거기에 더하여 휴머니즘적 요소가 있다.
오디션에서 매일 떨어지는 사돈처녀을 거두어주고
갈데없는 미혼모도 함께 살게 거두어준다. 참 좋은 집이다. 할아버지도 마음이 좋으시다.
시청률 1위로 우뚝서서 연장 방영한다고 한다. 오늘도 봐야지 히~^-^

어제 아내에게 전화하여 적당한 영화표를 예매해놓으라고 했다.
퇴근해 보니 “해운대”
국산영화였다.
극장에 가서 첫 장면을 보고
보지 말아야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주연이 설경구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인과 이혼하고 송윤아와 재혼하였다.
이혼 전에도 여배우와 염문에 시달렸고, 그런 이유로 부인과 별거중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딸의 양육권을 부인이 갖는것에 합의한 것을 보면 부인이 자녀를 돌보지 않았다거나
가정을 파탄낸 당사자라고 보이지 않는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데 이혼하고 재혼하는데 무슨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설경구같은 국민배우는 이미 공인이다.
공인은 행동이 공인다워야 공인이다. 행동이 시정잡배와 같다면 다시는 영화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영원히 설경구 영화를 안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조금 시간이 걸려야 용서할 수 있다. 아직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운대’
영화는 아주 수작이었다.
요즈음 한국영화는 맨날 칼질하고 몽둥이 들고 패싸움 하는거 빼면 없는데
재난영화이면서 그 속에 가족애와 함께 휴머니즘이 넘쳤다.
영화 괴물 이후 제일 잘된 영화였다.
그러나 설경구가 나오는 영화인줄 알았다면 나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있는 아들하고 메신져를 했다>
anbindr님의 말:
아빠가 병원 다녀오느라 이제야 봤구나, 벌써 일어났니?
아빠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물리치료 받으러 다니고 있단다.
엄마와 석영이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석영이가 뒷좌석에 앉아서 제일 충격이 컸다.
inyoung@mit.edu님의 말:
네
잘 치료받으세요.
프린터 삿어요.
anbindr님의 말:
프린터?
음…없었나? 잘했다.
inyoung@mit.edu님의 말:
네
아주싼 칼라레이져로
230불 정도
칼라레이져 중 제일 싼거 샀어요
anbindr님의 말:
한국에는 10만원짜리 칼라프린터도 있던데 …..
inyoung@mit.edu님의 말:
레이져?
anbindr님의 말
물론 도트지?
너는 레이저?
inyoung@mit.edu님의 말:
네
anbindr님의 말:
음..싸게 샀구나
그것도 칼라레이저라고? 이상하다 칼라레이져는 A4용이 200~300만원으로 아는데?
요즈음 많이 내렸나 아빠가 5년 전 쯤에 학교에서 300만원주고 산거갔은데? B4였나?
하여튼 중요하지 않다
inyoung@mit.edu님의 말:
네
보통 제일 싼게 아직도 80만원정도 하죠
근데 아주 아주 싼거는 40만원정도
근데 반값에 샀음
anbindr님의 말:
잘샀네!
집에는 책장을 샀는데 맞춤으로 방 규격에 맞추었다 .
그리고 요즈음은 FRP라고 불리우는 플라스틱계통 책장이 싼데
아빠는 삼나무 원목으로 만든 환경 친화적이고 피톤치드라는 인간에 유익한 물질이 나온다는 삼나무책장으로 샀다.
3배나 비싼값을 주고 샀는데 아직 주문제작 중이라 집에 도착은 안했다.
inyoung@mit.edu님의 말:
네
anbindr님의 말:
네 책을 넣고 사진찍어 보내주마.
네 마음에 들것이다.
그리고 집에 현관인터폰(영상안나오는것)을 자세히 보니 업체명이 있어서 전화햇더니
애프터서비스센타에서 방문한다고 하였다.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왜 여지껏 서비스 받을 생각을 못했는지 아빠 스스로 이상하다.
anbindr님의 말: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그 뒤에 나쁜 일이 온다.
그리고 나쁜 일이 있은 뒤에 기다리고 노력하면 또 좋은 일이 온다
새옹지마라고 하지
아빠가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더라 좋은일-나쁜일-그리고 좋은일-나쁜일…..
항상 좋은 일만 연속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은다는 뜻이다.
그러니 좋을 때 나쁜일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한다.
알았니?
inyoung@mit.edu님의 말:
네
anbindr님의 말:
어제 일찍 잔것은 잘했다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그럼 바쁠테니 이만 가련다
사랑한다 아들아 ! bye!
inyoung@mit.edu님의 말:
네
내가 근무하는 교육원 주변에 있는 요즈음의 식생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둥글레 산을 돌아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뻐꾹채
범부채….중략(노천명의 시 고향 귀절)
노루오즘인가? 하고 들여다 보았더니
잎이 다르게 생겼다. 그렇다면 혹 무릇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무실에 와서 책을 뒤져 보니 무릇이 맞다.
어려서 반찬으로 많이 먹던 그 무릇이다.
달개비가 한창이다. 요즈음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보인다.
교육원 뒷산에서 야생 당귀를 발견하였다.
느낌으로 ‘줄사철’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맞다!
산쵸나무 또는 제피나무라고 부르는 것으로 추어탕이나 보신탕 먹을 때 열매 가루를 넣는다.
교육원 뒷산에 야생으로 많이 자란다.
산쵸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가을에 열매가 열린다.
노랑원추리에 여치로 보이는 곤충이 앉아있는 것을 찍었다.
교육원 정원에 맥문동이 제철이다. 꽃을 피웠다.
요즈음 무궁화가 제철이다. 세상에 이렇게 사진이 멋있게 나오다니! 내가 보기에도 정말 좋다!
역시 교육원 정원의 무궁화
교육원 정원의 5엽송에 비둘기 한마리가 알을 품고 있다.
자동차를 몰고 경상북도 군위를 지나는데 지보사 라고 씌인 안내판이 있어 가던 길을 돌려 찾아갔다.
경북 군위군 군위읍 상곡리 280 에 위치한 신라의 의상대사 창건했다고 하는 절이었다.
대웅전 앞에 새로 만든 깨끗한 석등이 눈에 뛴다. 비록 새것이지만 제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저런 탑을 마당에 두고 싶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을 베낀것이다.
베끼더라고 이렇게 제대로 만들면 역사성이 없어도 보기에 좋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있는 국보 17호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정말 아름다운 석등이다.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윗 사진에 지보사 석등은 이것을 베낀것이다.
물론 뜯어보면 국보 17호처럼 만들지는 못했지만 분위기는 대강 살렸다. 이정도면 됐다. ^-^

구례 화엄사에 있는 국보 12호 석등이다.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이다.
신라 문무왕때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정말 아름다운 석등이다. 화려함의 극치이다.
실제 물건을 보면 놀랍게도 장중한 느낌이든다.5년 전에 보았다.

직지사 비로전 앞에 있는 석등이다. 근자에 새로 만든 티가 나는 물건인데 이게 뭐냐?
만들려면 제대로 만들어야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붕은 화엄사석등에서 따오고 몸체는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에서 따다가
짜집기를 했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다.
지붕은 화려하고, 몸체는 간결하니 너무 이상하고, 더구나 몸체가 길쭉하여 비례가 맞지 않는다.
검정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머리에 미스코리아 왕관을쓰고 있는 격이다.
내공은 없고 솜씨만 부리기 좋아하는 어떤 석공이 제멋을 부린다고 만든 것이 틀림없다.
없이 살던 집에서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되면
허세를 부리고 싶은 것이다.
직지사는 명색이 영남 제1 가람이라고 자칭하면서
절집만 컷지 문화적 내공은 빈곤하다.
여러번 소실되어 고쳐지은 것이 대부분이니
역사적 사료가 빈곤한 것이다.
이런 것을 보충이라도 하듯
직지사 입구에 다리를 놓는데도 정성이 깃들었다.
현대에 놓은 절 다리 중 내 입맛에 딱 맛다!
어쩌면 저렇게 난간 하나에도 정성을 가득 들였을까!
이정도면 허세가 아니고 진심이다. 정말 보기에 좋다.
요즈음 가구는 날카로운 칼로 컷팅하여 사용하다 보면 손을 베이기 십상이다.
모서리가 모두 칼날처럼 날카롭다. 과거 가구는 대패로 면을 다듬어 그런 일이 없었다.
만세교를 보니 돌을 갈아서 모든 면이 대패질로 부드럽게 다듬은것 같다. 정성이 들어있다.
일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탑 중에서 제일 완성도가 높은 것은 위 사진에서 보이는 국보 130호 선산 죽장동 5층 석탑이었다.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통일신라의 탑이며 크기가 큰 (높이 10m) 탑이다. 모전석탑으로 정말 장중한 탑이었다.
멀리 선산까지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얼마나 늠름하고 당당한가! 2층 기단으로 안정감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나 좋아했던 봉감모전5층석탑은 정감이 가는 탑이었고
가장 완성도가 높은 탑은 이 탑이었다. 너무 잘 생겨서 정이 안가나? ^-^
위 사진에서 지붕돌 경사면이 층단을 이루는 것은 전탑에서 볼수 있는 것으로 이 탑은 모전석탑 이라고 할 수 있다.
모전석탑은 두가지 형식이 있다.
아래 국보 187호 봉감 5층석탑 처럼 일정한 크기의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래 선산 죽장동 5층석탑 처럼 전형적인 석탑을 쌓듯이
돌을 매우크게 잘라 쌓고 지붕돌 낙수면을 전탑처럼 층급을 둔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석탑은 아래 직지사 석탑처럼 지붕돌을 하나의 통돌로 만들고, 몸돌 역시 하나의 통돌로 만들었다.
물론 기단부는 덩치가 크니 여러쪽을 맞추었다. 바로 이러한 형식이 탑의 종착역이었으며
그 종착역은 불국사 석가탑이다.
경북 여행 중에 차를 몰고 김천 직지사에 갔다.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는 1600년 이상된 고찰이지만 여러번 소실되어 지금은 모두 고쳐지은 건물 뿐이다.
직지사에 3개의 석탑이 있는데 모두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어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동안 한번도 찾지 않은 것은 국보급 문화재가 없기 때문이다.
별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그 동안 가지 않던 직지사와의 첫대면!
아내가 둘째 아들 석영이가 함께 찍었다.
문경군 산북면 서중리 도천사 터에 있던 3개의 석탑을 1976년 직지사로 옮겨온 것이다. 2층기단이 많은데
여기 탑은 모두 1층 기단인 점이 특이하고 1층의 몸돌 길이가 길어 상쾌하게 들려진 것이 이채롭다.
내가 보기에는 이 점이 층간 비례가 맞지않아 어설픈 느낌이 든다.
3개 모두 국보가 아니고 보물이다. 간결해서 좋은 단순절창의 3층석탑의 맛은 있다. 직지사는 매우 큰 절집이었다.
그러나 국보급의 문화재가 없는 것은 여러자례의 액운으로 없어진 때문일것이다. 그나마 도천사 터에 있던
3개의 탑을 모셔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탑의 상륜부는 없어진 것을 추정하여 만들어 올린것인데 자세히보니 불국사 석가탑의 상륜부와 똑같다.
석가탑을 보면서도 이 부분이 이상했는데……정확하게 고증할 길이 없으니 안타깝다.
무언가 어설프고 이상하다. 탑의 모양에 비하여 너무 호화롭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아니! 누구신가?
직지사에서 제일 감동받은 것은 돌담을 쌓면서 소나무를 베지 않으려고 나무 바깥으로 담을 돌려쌓은 것이다.
분명 공사 당시의 직지사 주지스님의배려였을 것이다.
부처님의 자비가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 자연의 미물에까지 미친것이다. 정말 어느 분인지 존경스럽다.
금강문에 들어가지 직전에 있는 문이었는데 이름이 생각나지않는다.
하여튼 그 문으로 들어서면 소나무가 길 가운데 서있다. 여간 길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주지스님은 내버려두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살아남은 소나무! 어느 분이신가 훌륭하시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탑리리 1388-1번지…열심히 차를 몰아 도착하였다.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멀리서도 탑이 보였다. 국보77호 탑리5층석탑이다.
국보 77호로 손색이 없는 명품이었다.
봉감모전5층석탑은 수성암인데 이것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삼국의 통일기 무렵에 세워진 신라탑으로 족히 1400 년 가까이 된 탑이다.
늦은 저녁에 도착하여 보고, 온천에서 묵은 다음 다음 날 아침 다시 와서 아내와 사진을 찍었다.
위 탑을 근접촬영한 것이다. 지붕 밑 추녀를 자세히 보면 여러조각의 돌을 쌓아 만든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모전석탑이다. 다만 봉감모전5층석탑에 비하면 지붕 벽돌의 크기가 큰것도 있어
점점 석재가 단순해지고 있으며 훗날 통돌로 만드는 석탑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몸돌은 여기서 이미 단순해졌다. 지붕돌도 여러조각으로 나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모전석탑이다.
역시 위 탑을 촬영한 것이다. 감실이 있는 1층 몸돌의 양쪽 기둥을 보면 배흘림 기둥이다(엔타시스시스템)
나무기둥을 높이 세웠을 때 위쪽이 넓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착시를 고려해 의도적으로
미리 위쪽을 좁게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점은 목조건축에서 원용한 것으로 지붕돌의 낙수면 모습은 전탑에서,
모서리 기둥처리는 목탑에서 볼수있는 수법을 함께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탑이다.
우리나라 석탑이 전탑과 목탑에서 발전해가다가 두가지 형식이 결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되는 탑이다.
직지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이다. 간결하고 아름답다. 통일신라 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기단이 대부분 2층인데 이것은 1층이다.
그리고 1층의 높이가 다른 탑보다 높아 위로 들려진 상쾌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않는다. 이 탑이 국보가 아니고 보물에 머무르는 것이
아마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한다. 하여튼 전체적으로 완벽한 균형이 아니다.
이것은 석탑으로 위의 모전석탑과 비교하기 위해 찍었다.
위 직지사 대웅전 앞 석탑을 근접촬영한 것이다. 바로 윗 사진의 석탑이다.
지붕돌을 보면 통돌인것을 알수 있다. 쪼개진 것이 보이지만 통돌이다.
추녀 역시 벽돌을 쌓은 것이 아니고 지붕돌과 추녀돌을 한개의 통돌로 조각한 것이다. 그래서 석탑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제일 감동 받은 것은 아래 사진에서 보는 봉감모전5층석탑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서 쌓은 탑이며 탑의 발달 과정에서 보면 제일 초기 단계의 탑인데
그래도 이것이 좋다. 왜 그렇까? 내 마음 나도 모른다.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