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저 세상으로 가다>
내가 27살 젊은 시절에 옆자리에 함께 근무한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3년을 같이 근무했는데 하숙집도 같아서 밤낮으로 만났다.
오병은 선생님! 그는 천재였다.
큐빅을 맞추는 설명서가 잘못되었다면서 그것을 나름대로 고쳐서 더 빠른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고, 사냥을 좋아하셨는데 사냥감의 거리에 따른 조준점을 설정하기 위해 하숙방 벽에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총 탄알이 날아가는 포물선을 전지 그래프용지에 그려놓아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맑은 날 밤 하숙집 마당에서 별을 보고 모든 별자리를 다 외워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었더니 “맹선생님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배우지 않으셨나요” 라고 대답하였다.
수학교사였지만 과학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원래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색약인 관계로 서울대 수학과에 진학하였다. 나중에는 색약도 할 수 있는 원자물리를 공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켜셨다. 아주 좋은 솜씨는 아니었지만 놀라웠다. 어떻게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정식으로 레슨을 받은 적은 없고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배웠으며, 집에 와서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놓고 연습했다고 했다.
그러나 음악을 깊이 있게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도 아니었다. 연주를 무슨 기능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분이 과학과 수학에만 능통하셨고 인문사회학에는 아주 문외한이었으며 관심조차 없으셨다. 어느 날 내가 “아랑드롱이 무언지 아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그게 먹는 것입니까? 라고 대답하여 놀랐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과학적 논리에 충실한 오선생님이 2500년전 주나라 때 만들어진 주역을 신봉하며 해박한 한문실력으로 상대방의 사주를 보아주기를 좋아했다. 내 사주는 아주 외우고 다니셨다.
교무관계 서류를 철하는 방법을 놓고 윗사람과 크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오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이 사실 옳았다. 다만 그분의 방법대로 하면 일이 매우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편한 방법대로 하는 것이 관례였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셨다.
내가 말렸지만 친구의 소개로 두 배의 봉급을 준다는 서울의 유명한 학원강사로 스카웃 되셨다. 학원이 얼마나 치열한 프로무대인가! 평생을 류마치스관절염으로 고생한 그 분의 체력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힘이 들어 한 달만에 그만두셨다. 그것이 직장생활의 끝이었다.
40대 중반에 직장을 잃었으니 갈곳이 없었고 입시학원을 해보려 했으나 입시학원은 면적이 커야 허가를 낼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속셈학원을 10 여년 운영했지만 이미 늙었고 실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학원 운영은 적자였다. 실패의 연속이었고…….속셈학원 운영에 너무나 고민한 나머지 1996년에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다행이 깨어났으나 기억을 상실하였다. 한글은 물론이고 숫자도 잊으셨다. 번호를 읽지 못하니 시내버스를 타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또 이상한것은 모든 기억을 잃었는데 음악에 대한 기억은 정확하게 남아있었다. 정확한 음계를 알고 있었고, 피아노도 잊지 않았다. 그분은 피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낚시대로 구멍을 뚤어서 만들다가 수도파이프, 플라스틱 파이프, 등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피리로 만들었다. 파이프의 지름에 따라서 소리가 굵고 감미롭다면서 여러가지 피리를 불어주셨다. 나를 만날 때마다 피리 악단을 조직해달라고 조르셨다. 요즈음에 손으로 볼품없이 만든 피리악단에 몰려올 아이들이 어디있겠는가?
근자에는 동사무소에 실업자로 신고하여 새마을 취로사업에도 나가고 길거리에서 담배꽁초나 휴지를 줍는 일을 하셨다. 많이 회복되어 아파트 경비로 잠시 취업을 하기도 했었다. 지난 11월 13일은 둘째딸 결혼이 있다고 하여 갔었는데 얼굴빛이 좋아보였고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면서 쾌활하게 웃으셨다. 한글도 다시배웠고 성경 한쪽을 읽는데 30분이 걸린다고 하셨다. 모든 기억을 잊은 상태에서 글공부도 다시 시작하고,하나님도 새롭게 알게되어 기쁘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다. 결혼식장에서 원주율(파이)를 3.14…………….20자리 이상 기억하시며 읊어서 놀라웠다. 어떻게 그것은 잊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결혼식 다음 날 쓰러지셨다. 식물인간처럼 한달여를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 어제 장례식에 다녀왔는데 문상객도 없었다. 20여년간 교직생활을 했는데….사모님에게 물으니 서울대학 동창 한분이 오셨고, 문상객 중에서 교사는 나와 박명옥선생님 뿐이었다. 그리고 3시간이나 앉아있었는데 가족외에 문상객은 없었다. 너무나 쓸쓸한 생각이 들어서 같이 하숙을 했던 전병혜선생님에게 전화로 알렸다.
세상을 잘못 만난 천재 오병은 선생님은 그렇게 가셨다. 참으로 쓸쓸하고 서글프다. 다음 세상에 그 분의 천재성을 발휘할 날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오병은 선생님과의 인연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