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파서 안과에 갔더니 대기실에 시집이 한권있어 읽었다.
정성수 시인이 말미에 평론을 썼는데 그 평론 앞부분 글이 좋아서 스마트 폰으로 찍었다가 여기에 타자로 적는다.
고대나 현대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지구별에서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시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정을 노래하는 일일 것이다. 즉 시라는 이름을 가진 언어예술은 각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서정적, 주관적으로 읊은 서정시가 시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가리켜주는 하나의 생태적 모성적 운명적 본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의 모든 예술이 모두 다 그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작가의 감동이나 충격을 전해주는 것을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특히 시는 인간의 청각에 호소하는 음악이나 시각에 호소하는 미술과 달리 언어 즉 말의 의미를 통해 인간의 사고와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이므로 음악이나 미술처럼 1차적 감성 체계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 주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시는 본능적 감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초적 감동의 체계가 아니라 이성적 활동으로 뜻을 전달하고 감동시키는 의미의 쳬계이다. 따라서 시는 음악이나 미술보다도 오히려 더욱 감각적, 감성적인 데에 보다 강렬한 열정을 투사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특수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구체적 사물의 체계가 아닌 가장 추상적인 언어를 매개체로 삼고 있는 시는 독자에게 원초적 감동을 전해 주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인의 정신적 특성상 한국시는 서구시와 달리 사고의 전달, 의미의 전달보다 감성과 감정의 전달에 더 투신해야 하는 보다 근원적인 서정시 중의 서정시 그 고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대한민국의 윤재근 평론가가 이 세상에 영원히 남는 것은 서정시 뿐이라고 갈파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한국시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고 쉽게 짚어 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