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젊은 시절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줄줄 외웠었다. 오랜만에 낭송해본다. 말미는 많이 잊었다.
가수 박인희의 낭송이 유명하다. 그녀의 낭송은 건조하고 간결하게 절제된 언어가 압권이다. 그녀는 어디서 무얼할까? 궁금하다.
![2006081562691_2006081540491[1].jpg](https://anbindr.com/wp-content/uploads/xe_files/60/121/057/2006081562691_2006081540491%5B1%5D.jpg)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926.8.15일 강원도 인제 출생, 1956. 3. 20졸, 서구적 감수성과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면서 어두운 현실을 서정적으로 읊은 후기 모더니즘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1939년 서울 덕수초등학교를 마쳤다.
이어 경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해방이 되자 학업을 중단했다.
서울로 와서 ‘마리서사’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여러 시인들과 사귀었고, 서점을 그만두고는 〈자유신문〉·〈경향신문〉 기자로 근무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육군 소속 종군작가단에 참여하고 피난지 부산에서 김규동·이봉래 등과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했다.
1955년 대한해운공사에서 일하면서 미국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심장마비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1946년 〈국제신보〉에 시 〈거리〉를 발표해 문단에 나온 뒤 〈남풍〉(신천지, 1947. 7)·〈지하실〉(민성, 1948. 3) 등을 발표하고,
1949년 김수영·김경린·양병식 등과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합동 시집을 펴냈다.
모더니즘 시를 지향했던 ‘후반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 〈검은 강〉·〈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목마와 숙녀〉 등을 발표했는데,
이들 시는 8·15해방직후의 혼란과 6·25전쟁의 황폐함을 겪으면서 느꼈던 도시문명의 불안과 시대의 고뇌를 감성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한 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는
그의 시의 특색을 잘 보여주면서도 참신하고 감각적 면모와 지적 절제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1955년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시집으로 생전에 〈박인환 시선집〉(1955)이 나왔고, 이어 〈목마와 숙녀〉(1976) 등이 발행되었다.
죽기 1주일 전에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뒤에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고 있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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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목마와 숙녀”에 대하여
박인환 “목마와 숙녀”에 대하여
모든 떠나간 것들에 대한 애상과 그리움
박인환(1926-1956)은 김수영(1921-1968), 김경린(1918- ), 조향(1917- ) 등과 더불어 1950년대 모더니즘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들 시의 특징은 6.25 전쟁 이후에 널리 퍼진 허무주의와 상실감을 도시적 감수성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렸다는 데 있다.
그 가운데 박인환은 가장 감성적인 기질을 가진 시인으로, 비애와 절망의 감정을 노래하는 데 치중하여, 자기 체념적 감상주의에 빠져 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목마와 숙녀”에는 이러한 그의 기질과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목마’는 순수와 동심을 상징하는 시어이며, ‘숙녀’는 뒤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1882-1941)를 가리킨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작중 인물의 심리를 논리적인 맥락에 구애 받지 않고 그대로 파악하여 묘사하려는 수법)에 중점을 둔 내면 묘사의 글을 주로 쓴 영국의 여류 소설가이다. 그녀는 “등대로”, “세월” 등의 소설을 남기고, 제 2차 세계 대전이 가져온 정신적 중압에 견디지 못했음인지 투신 자살로 생애를 끝마쳤다. 이러한 비극적 생애의 인물과 떠나간 목마, 늙어 버린 소녀, 작별, 쓰러진 술병, 불빛이 보이지 않는 등대 등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작품 전체는 시들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哀想-슬픈 생각)과 비탄의 노래가 된다.
그러기에 그는 1950년대를 목마가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난 불안한 절망적인 시대로 인식한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린 시대인 것이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그저 잡지의 통속(通俗)’하다는 구절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의 쓰라린 독백이다.
즉 모든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들이 허망하게 무너진 황량한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어딘가에 호소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거쳐 마침내 이 시는 ‘내 쓰러진 술병’으로 끝을 맺는데, 이 마지막 행은 삶에 대한 그의 비관적 태도가 집약되어 나타나고 있는 행이라 할 수 있다.
약간은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우면서도 애상이 서려 있는 이 시는 이처럼 모든 떠나간 것들에 대한 허무와 그리움을 감각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한 잔의 술, 버지니아 울프, 목마, 숙녀, 방울 소리, 애증의 그림자, 가을 바람 소리 등과 같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언어들은 박인환의 짧은 생애만큼이나 우리들에게 애처롭고 안타까운 느낌을 준다.
버지니아 울프
Adeline Virginia Stephen

출생
1882년 1월 25일(1882-01-25)
영국 런던
사망
1941년 3월 28일 (59세)
영국 이스트서식스 루이스
직업
소설가, 수필가, 발행자, 비평가
주요 작품
배우자
레너드 울프 (1912년 ~ 1941년)
애덜린 버지니아 스티븐 울프(Adeline Virginia Stephen Woolf, 1882년 1월 25일 ~ 1941년 3월 28일)은 20세기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이다. 울프는 의식의 흐름 장르를 탄생시키고 완성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울프의 결혼 전 이름은 아들린 버지니아 스테판이며,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슬리 스테판은 《18세기에 있어서의 문학과 사회》의 작가였으며, 어머니는 줄리아 덕워스이다. 버지니아는 아버지의 방대한 서재를 이용할 수 있었다. 1895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울프는 최초의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1897년,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역사학과 그리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04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울프는 두 번째 정신이상증세를 보여 투신자살시도를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1912년 레오나드 울프와 결혼하고 1915년 《항해》을 출판한 뒤 1919년에는 《밤과 낮》을 간행했다. 1925년에는 《댈러웨이 부인》이 큰 인기를 받았고 1927년에는 《등대로》, 1928년에는 《올랜도》가 호평을 받았다. 1941년 3월 28일 우즈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되었는데, 강가에 울프의 지팡이와 발자국이 있었다. 이틀뒤에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서재에는 남편과 언니에게 남기는 유서가 있었다. 자살의 원인으로는 허탈감과 환청, 정신이상 발작에 대한 공포심 등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