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음은 상쾌합니다 ^-^

을미사변은 1895년(고종 32) 10월 8일 새벽 조선 주재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우의 지휘하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조선의 왕비인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그 시신을 불태워 버린 야만적 사건을 말합니다. 을미개혁은 을미사변 직후인 1895년 8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추진된 조선의 일련의 제도 개혁을 말합니다.

을미개혁은 친일적 성향이 짙은 점이 특징입니다. 을미개혁의 내용 중 태양력 사용, 연호 건양(건양'(建陽)이란 양력을 새로 세운다는 뜻) 등이 있습니다.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을 보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어요.
 1895년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채택되면서 신정과 구별되는 구정으로 빛이 바래기 시작했고,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설을 쇠는 사람들이 핍박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조선 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의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조선인들이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거나 떡 방앗간을 돌리는 경우에는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웠지요.
 또, 조선인들 중 음력설에 세배를 간다거나 설빔을 입은 사람에게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거나 경찰을 통해 감시하는 등 온갖 박해를 가했습니다.
설이면 학생들의 도시락을 조사해 제사음식을 싸온 학생에게 벌을 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지금도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를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을 없애지 못했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도 40여년간 음력설은 명절로서 대접받지 못하고 양력 설을 쇠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부분 가정에서 여전히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는 전통을 유지했기 때문에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1989년에 음력설을 부활시켰지요.
실로 94년 만에 설이 회복된 것입니다.
설의 어원에 대한 근거는 여럿입니다. 그러나 설은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날이며 첫머리라는 의미에서 어원을 유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여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설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의 속성을 강하게 띠고 있습니다. 낯설음이 얼마나 상큼하고 좋습니까? ^-^
낯선 곳에 가서 뜻을 펴고 도전해야 빛이 납니다. 우물안의 개구리는 발전이 없습니다. 이상화를 보세요
2013년 1월21일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빙상대회에서 500m를 36.80으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동양인의 작은 체구로 육상의 100m에 해당한다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 세계신기록을 달성한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낯선 곳에 가서 우뚝설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앞집 황정아네 똥개는 나만 보면 대문 안에서 짓습니다. 내가 걸어가면 집안에서 내가 걸어가는 쪽으로 이동하면서 악다구니로 짓어댑니다.
어느날 대문은 닫히고 똥개가 밖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나를 보더니 꼬리를 양다리사이로 내리고 눈치만 보면서 벌벌 떠는데 정말 웃겼습니다.
집안에서만 설치면 뭐합니까! 낯선 곳에서 힘을 내야지! 설은 그렇게 진취적이고 개방적입니다. 낯설은 곳에서는 불안하기 때문에 치열하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상촌중학교 학생여러분! 왜놈들이 빼앗으려 했던 설! 이제 구정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설! 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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