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림에는 마음껏 봄의 정다움이 이르렀다.

한국 근대 단편소설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김동인의 배따라기(전체18쪽)는 처음 시작  부분 1쪽 반 분량을 아름다운 봄날씨에 할애하고 있다.

왜 김동인이 천재인지 보여주는 명문장이다. 소설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서정성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 부분이 오래 잊혀지지않고 내머리에 각인되어있다. 오늘 일부러 찾아서 타자하면서 봄의 정취를 이 아름다운 봄날에 다시 느껴본다.

띄어쓰기는 했으나 시간을 줄이려 문장부호는 대부분 생략하였다.

 

좋은 일기이다.

하늘에 구름 한점 없는–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치 못할 위험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그만 사름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이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게 뭉글뭉글 엉키는 분홍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위로 뒹굴고 있었다. 이날은 삼월 삼질 대동강에 첫 뱃놀이하는 날이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놀잇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 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보드라운 봄공기를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오는 조선 아악은 느리게 길게 유창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또 애처롭게 —

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어름

심지어 사람의 가슴 속에 봄에 뛰노는 불붙은 핏줄기까지라도 습기 많은 봄공기를 다리 놓고 떨리지 않고는 두지 않는다.

봄이다.

봄이 왔다.

부드럽게 부는 조그만 바람이 시커먼 조선 솔을 꿰며 또는 돋아나는 풀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음악은 다른 데서는 듣지 못할 아름다운 음악이다.

아아, 사람을 취케하는 푸른 봄의 아름다움이여 열다섯살부터의 동경생활에 마음껏 이런 봄을 보지 못하였던 나는 늘 이것을 보는 사람보다 곱이상의 감명을 여기서 받지 않을 수 없다.

평양성 내는 겨우 툭툭 터진 땅을 헤치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새기와 돋아나려는 버들의 어음으로 봄이 온 줄 알 뿐 아직 완전히 봄이 안 이르렀지만

이 모란봉 일대와 대동강을 넘어 보이는 가나안 옥토를 연상시키는 장림에는 마음껏 봄의 정다움이 이르렀다.

그리고 또 꽤자란 밀 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장림의 그 푸른빛 만족한 웃음을 띠고 그 벌에 서서 내다보는 농부의 모양은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다.

구름은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양이다. 그 밀 위에 비치었던 그림의 그림자는 그 구름과 함께 저편으로 몰려가며 거기는 세계를 아까 만들어 놓은 것같은 새로운 녹빛이 퍼져나간다.

바람이나 조금 부는 때는 그 잘자란 밀들은 물결과 같이 누웠다. 일어났다 일록일정(一綠一靑)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    봄의 한가함을 찬송하는 솔개들은 높은 하늘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더욱 더 아름다운 봄의 향그러움을 더한다.

솟아나리라.

따스한 봄정에

솟아나리다.

나는 두어번 소리나게 읊은 뒤에 담배를 붙여 물었다. 담뱃내는 무럭무럭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에도 봄이 왔다.

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 만큼 하늘은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얽히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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