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합기도 도장에 다녔었다. 기억으로는 낙법을 배웠고 급소를 익혔다. 지금도 낙법을 여러가지 할 수 있고 몇 개의 급소는 알고 있다. 사실 나는 평생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안았다. 내 인생에 그럴 여유도 사실 없었다.
퇴직 후 수영을 배웠다. 운동신경이 둔한 나는 힘들여 배웠다. 자유형, 평영, 접영, 배영 등 여러가지 영법도 익혔다. 이 사진은 언젠가 동료들과 태국 여행을 갔을 때 호텔 수영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하체가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힘을 빼고 편안한 자세로 수영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 여기에 올린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나는 아들만 둘을 두고 딸을 두지 못했다. 나와 아내에게 모두 불행한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아들을 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내 버킷리스트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녀 안아보기가 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한꺼번에 둘을 안아보는 것으로 통쾌하게 해결하였다。 딸 쌍둥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뼈마디가 더 있다고 한다。 하여 몸이 유연하다。 그래도 그렇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정말 유연하다。 발레학원에 다닌 후 더 유연해졌다。
우리집 마루에서 엎드려 천정을 볼 수 있냐고 했더니 금세 저런 고난도의 자세를 취했다。 역시 감사한 일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이신 김원중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부음을 전하지 않아 모르고 있다가 며칠 전 납골당에 다녀왔다. 문학기림회 회장을 지내셨고 포항공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다가 정년하셨다.
매우 인자한 분이셨고, 자상한 분이셨다. 혈관질환으로 두 차례 쓰러졌다가 다시 재활과정을 거쳐 지팡이를 집고 다니셨는데 90세에 가셨다. 슬프다. 부디 아프지 않은 곳에 가셔서 평안하시길 빈다.
신문에 난 기사를 찾아 여기에 올린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끝내 시가 된 삶…김원중 포스텍 명예교수 별세
김희윤 기자 2026. 4. 7. 11:40
뇌경색과 낙상으로 두 차례 크게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나 시와 수필을 쓴 김원중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명예교수가 6일 오후 7시20분께 대구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7일 전했다. 향년 90세.
1936년 4월3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고인은 안동에서 자랐다. 10대 초반 부친을 여읜 뒤 소년가장이 돼 잡화상, 화장품 행상, 초등학교 급사 일을 하며 중학교부터 대학원까지 12년간 야간부를 다녔다. 대구 오성고와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대학원을 거쳐 1980년 중앙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난 속에서도 고인을 붙든 것은 문학이었다. 시인 유치환과 박양균의 영향 속에 시와 희곡 연구의 길로 들어섰고, 고등학생이던 1957년 시집 ‘별과 야학’을 펴냈다.
고인은 1968년 영남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영남여자초급대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가 됐다. 이후 영남전문대와 영남대, 대구한의대, 포항공대(현 포스텍)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2001년 퇴직 이후에도 삶은 그를 여러 차례 시험했다. 2002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왼쪽 손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고, 2007년에는 낙상으로 고관절 수술도 받았다. 처음에는 휠체어에도 오르지 못하고 말도 하기 어려웠지만, 아내와 며느리의 도움 속에 3년간 재활한 끝에 다시 지팡이를 짚고 바깥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투병 뒤에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필집 ‘아버지가 주신 연필 두 자루’, ‘사람을 찾습니다’, ‘걷고, 웃고, 읽으며’를 냈고, 평론집 ‘영남의 인물 인문학사’도 펴냈다. 2019년에는 시집 ‘명당 죽집’을 출간했다.
고인은 대구 반월당의 한비문예창작대학과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에서 10년 넘게 문학 강의를 이어갔고, 경북문인협회에서도 활동했다. 2024년 5월 다시 쓰러진 뒤 2년간 투병하다 끝내 눈을 감았다.
아들 김기현씨는 “휠체어를 탄 채 택시를 부르겠다고 하시기에 불가능하다고 말렸더니, 아버지가 ‘너는 왜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고 하셨다”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주인공처럼 어떤 시련이 와도 끝내 버텨내신 분”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이옥희씨와 1남1녀, 며느리 한희정씨, 사위 크리스 포터씨가 있다. 빈소는 대구전문장례식장 특302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 7시30분이다. 장지는 천주교 안성추모공원이다.
둘째 아들 석영이 내외의 초청으로 미국령 괌에 다녀왔다. 일본 남쪽 필리핀 동쪽에 위치한 서울시 면적 정도의 섬이다. 1512년 마젤란에 의해 발견되었고 33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 였다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미국이 지배했고 2차 대전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할 때 괌도 쳐들어가 28개월간 일본이 괌을 지뱄했고 종전 후 다시 미국령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영토의 25%를 미군기지로 사용하고 있고 넓은 해수욕장이 있는 곳은 세계적인관광명소가 되었다.
경기문학인 행사가 수원예총 마당에서 열렸다. 아직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학인들이 모였다. 행사는 잘 진행되었다. 문제는 행사 도중 어머니 주치의로부터 큰 병원으로 옮겨야 되는 사태가 생겼다고 전화가 왔다. 축사도 해야 하고 여러가지 할 일이 있었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단을 내렸다.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대신 역할을 맡아 줄것을 당부하였다.
집에 들여 어머니 대학병원 진료카드를 챙겼다. 그리고 어머니가 계신 재활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주치의가 이제 체온이 안정되어 안와도 될것 같다는 전화가 왔다.
오늘 정신 없는 하루였다. 이왕 병원에 온김에 어머니 옆에 120분 동안 앉아있다가 다시 행사장으로 갔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저녁을 먹는 식당에 합류하여 밥을 먹고 차까지 마시고 집에 왔다. 감사한 하루였다.